[더팩트ㅣ울릉=김성권 기자] 가을이 깊어질수록 몸값이 높아지는 것이 있다. 바로 울릉도의 늙은 토종호박이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울릉도 산비탈 곳곳에서 누렇게 익은 토종호박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섬마을에도 풍성한 가을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15일 울릉군 일대에서는 울릉도 대표 특산품인 호박엿과 호박빵 등의 주원료로 사용되는 토종 섬호박 수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울릉산채영농조합법인은 이날부터 잘 익은 토종호박을 선별해 수매하고 있다. 수매 현장에는 수확기를 맞은 호박들이 산더미처럼 쌓이며 장관을 이뤘다.
올해도 울릉도 식품가공업체들은 1년 동안 사용할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 본격적인 수매에 들어갔다. 해마다 이맘때면 지역에서 생산된 늙은 호박 60~70t가량이 수매된다.
이날 최고 상품 기준 수매가는 ㎏당 1100원 선에서 형성됐다.
울릉도 토종호박은 단순한 농산물을 넘어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 먹거리의 핵심 원료다. 울릉도 명물 호박엿을 비롯해 호박젤리, 호박빵 등 각종 가공식품에 폭넓게 활용된다.
특히 잘 익은 늙은 호박은 비타민과 미네랄 등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건강식품 원료로도 주목받고 있다.
울릉군은 그동안 토종호박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농가에 일정 금액의 생산장려금을 지원해 왔지만, 감사원 감사에서 관련 사항이 지적된 이후 현재는 종묘 구입비 중심으로 지원하고 있다.
농가 입장에서는 생산비와 인건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안정적인 수매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지역 가공업체들도 농가와의 상생을 위해 수매 물량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울릉산채영농조합법인 관계자는 "지역경제 침체로 농가들의 수입원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농가와 함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호박 수매에 나서고 있다"며 "유기농으로 재배된 호박을 엄선해 제조·가공하고, 방부제나 색소를 사용하지 않은 천연 식품원료를 만들어 호박빵 등 울릉도 향토 먹거리를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릉도 호박엿에는 섬 개척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독특한 이야기도 깃들어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울릉도 개척 당시 혼기를 놓친 한 처녀가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살다가 육지로 시집갈 날을 받아놓았다. 어느 날 아버지를 홀로 두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호박범벅을 끓였는데, 그 사이 호박범벅이 졸아 굳어버렸다고 한다.
마침 지나가던 과객이 이를 맛보고 "아, 호박엿이군"이라고 감탄하면서 오늘날 울릉도 호박엿의 유래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이야기는 울릉도의 자연과 사람 그리고 생활문화가 지역 대표 먹거리로 이어졌다는 상징적인 설화로 자리 잡고 있다.
가을이면 울릉도 곳곳에서 노랗게 익어가는 토종호박은 단순한 농작물이 아니다. 농민들에게는 소중한 소득원이고 가공업체에는 1년을 준비하는 귀한 원료이며 관광객들에게는 울릉도를 떠올리게 하는 향토의 맛이다.
늙을수록 값어치가 높아지는 울릉도 토종호박. 가을 햇살 아래 잘 익은 호박 한 덩이가 울릉도의 농업과 향토산업, 관광을 잇는 든든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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