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울릉=김성권 기자] 바다 건너 울릉도에 한라봉이 열렸다.
푸른 감귤 잎 사이로 주황빛 한라봉과 천혜향이 탐스럽게 매달리고, 하우스 한쪽에서는 포도가 익어가고 있다. '산채의 섬'으로 불려온 울릉도의 농업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감자와 옥수수, 삼나물과 부지갱이 등 산채류가 주축이었던 울릉 농업에 감귤과 포도, 사과 등 새로운 과수들이 등장하면서 섬 농업의 작목 지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울릉군 북면 평리마을 박분숙 씨 농가는 울릉도에서 보기 드문 한라봉과 천혜향 재배에 성공하면서 변화의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박 씨의 하우스에 들어서면 울릉도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할 만큼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푸른 잎 사이마다 한라봉과 천혜향이 열매를 맺고 있다.
육지에서는 흔한 감귤류지만 울릉도에서는 의미가 남다르다. 바다 건너 섬에서 감귤이 자라고 꽃을 피운 뒤 실제 수확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울릉 농업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 때문이다.
박 씨는 수년 전부터 하우스 시설을 활용해 한라봉과 천혜향 재배에 도전했다. 울릉도의 기후와 토양, 일조 여건 등에 맞춰 재배방법을 조절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결실을 맺었다.
감귤만이 아니다. 하우스 안에서는 포도도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아직 대규모 상업재배 단계는 아니지만 직접 수확해 이웃과 나누고 일부는 판매하면서 새로운 소득작목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박 씨는 경산에서 과수 재배 경험을 쌓은 뒤 울릉도에 정착했다. 육지에서 익힌 재배 경험을 울릉도의 농업환경에 접목하면서 남들이 쉽게 시도하지 않았던 과수 재배에 도전했고, 하나둘 성과를 만들어냈다.
울릉도 농업의 변화는 민간 농가에만 머물지 않는다.
울릉군농업기술센터도 새로운 과수작목 발굴에 나서고 있다. 과학영농실증시범포에서는 사과 실증재배가 진행되고 있다.
울릉도에서 사과가 자라고 실제 열매까지 맺는 모습은 지역 농업 관계자들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울릉도 주민들이 먹는 대부분의 과일은 육지에서 들여왔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운송시간과 물류비가 발생하고, 신선도가 중요한 과일의 경우 수송 과정에서 품질 저하 가능성도 있었다.
울릉도에서 과일을 생산할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동시에 농가의 새로운 소득원을 확보하고, 육지에서 들여오는 농산물의 물류 부담도 일부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울릉도의 과수농업이 당장 새로운 산업으로 자리 잡는 것은 아니다.
섬 특유의 강한 바람과 일조량, 토양환경 등은 육지와 다르다. 품종별 적응성 검증과 재배기술 개발은 물론 시설투자와 안정적인 판로 확보도 풀어야 할 과제다.
무엇보다 일부 농가의 재배 성공만으로 울릉도의 과수산업 가능성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이번 도전이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울릉도에서는 무엇을 재배할 수 있는가'라는 기존의 질문에서 벗어나 '울릉도에서 무엇을 새롭게 재배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농업에 위기이지만 동시에 재배 가능 작목의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이기도 하다. 기온 상승과 시설재배 기술 발전이 맞물리면서 과거에는 쉽지 않았던 작목에 대한 도전이 가능해지고 있다.
남구연 울릉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은 "울릉도 농업은 삼나물과 부지갱이 등 산채나물이 주산작목이지만 기후변화와 재배환경 변화로 과수재배도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다"며 "대체작물로 과수재배가 정착될 수 있도록 시험재배와 연구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울릉 농업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평리마을 하우스에 매달린 한라봉과 천혜향, 익어가는 포도, 그리고 실증포장에서 열매를 맺은 사과는 분명한 변화의 신호다.
기후변화가 울릉도 농업에 던진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바꿀 수 있을지, 섬 농업의 새로운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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