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영주=김성권 기자] 경북 영주 강가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이 있다. 외나무다리와 전통 고택이 어우러진 무섬마을이다. 이곳의 풍경은 수백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문화유산은 늘 위협 속에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반복된 대형 산불은 전통마을과 문화재를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현실적인 위험이 됐다.
12일 오후 고요하던 무섬마을 주변에 소방차가 멈춰 섰다. 영주소방서 대원들이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산림 외곽에 친환경 산불지연제를 살포하는 예방 활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약 3톤의 액체가 마을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방어선'을 만들었다.
이 지연제는 단순한 물이 아니다. 불길의 확산 속도를 늦추고 진화 효율을 높여 물보다 두 배 이상 높은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토양과 수생 생물에 영향을 주지 않는 친환경 성분이라는 점에서 전통마을 보호에 적합하다.
더 중요한 의미는 따로 있다. 이 활동은 "불이 난 뒤 끄는 대응"이 아니라 "불이 오기 전에 막는 보호"라는 점이다.
이미 우리는 그 효과를 경험한 적이 있다. 지난해 경북 대형 산불 당시 소방당국은 산불지연제를 집중 투입해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을 화마로부터 지켜냈다. 당시 투입된 지연제는 134톤. 그 '보이지 않는 장벽' 덕분에 세계적 문화유산이 무사할 수 있었다.
문화유산 보호는 화려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재난이 오기 전에 위험을 줄이는 조용한 노력의 연속이다.
무섬마을을 둘러싼 3톤의 액체는 단순한 화학 물질이 아니다. 그 안에는 "역사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약속이 담겨 있다.
문화유산은 한 번 잃으면 다시 만들 수 없다. 그래서 가장 좋은 진화는, 어쩌면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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