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도 못하고 저버린 청년'…경기도의회 숨진 공무원 추모

경기도의회 현판에 붙여진 사망 공무원 추모 메시지. /이승호 기자

[더팩트ㅣ수원=이승호 기자] '피지도 못하고 저버린 아름다운 청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일은 월급날이 아니라, 동료 직원이 외롭게 죽은 날.'

'미안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더 미안해.'

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 공무원들이 30일 경찰 수사를 받다 숨진 도의회 사무처 동료를 기리는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동료가 숨진지 여흘 만으로, 그동안 도의회의 늑장 입장 표명과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노동조합 항의, 근조화환 시위 등 우여곡절 끝에 마련된 자리다.

추모의 시간은 도의회 청사 1층 소녀상 앞에서 동료 공무원들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속 지부장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소녀상 옆에 마련된 작은 단상 앞에서 동료 공무원들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줄지어 헌화했다.

단상에는 고인의 영정 대신 '부조리한 관행과 책임 전가의 무게를 홀로 견뎌야 했던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에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적힌 펫말이 놓였다.

또 '최근 경기도의회 국외연수 수사 과정에서 공무원이 사망하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의회 국외연수 운영의 불투명성, 책임이 실무자에게 전가되는 구조, 공직자를 보호하지 못한 제도적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전공노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게 진상규명, 재발방지 대책, 직원 보호 방안 등을 강력히 요구한다'는 문구도 적혔다.

헌화를 마친 동료 공무원들은 단상 옆 경기도의회 현판에 고인을 추모하는 메시지를 포스트잇에 적어 붙였다.

'말단 공무원에게 책임 전가 반성하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힘든 시간 함께 해주지 못해 미안해', '미안해요', '말도 못하게 힘들고 억울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편히 쉬세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등 대부분 고인을 향한 추모와 미안함을 담은 메시지였다.

30일 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 공무원들이 경찰 수사를 받다 숨진 도의회 사무처 동료를 기리는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이승호 기자

이 자리는 전날 경기도의회 김진경 의장(민·시흥3)이 공무원 사망 9일 만에 입장문을 낸 뒤 전공노가 마련했다.

현재 도의회 청사 1층 안팎에는 전공노 전국 각 지부와 보낸이 불명의 근조화환 220여 개가 놓여 있다.

도의회가 유족의 뜻이라며 숨진 공무원의 부고조차 알리지 않고 침묵하자, 전공노는 연일 성명을 내 입장 표명과 진상규명 등을 요구한 데 이어 근조화환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도의회 사무처가 지난 26일 보낸이 불명의 근조화환 1개를 지하로 치웠고, 다음 날 전공노 각 지부에서 보낸 근조화환 3개도 사라지자 '근조화환 시위'로 번진 것이다.

추모의 시간 뒤 도의회 사무처장과 의정국장, 총무과장 등이 전공노 지부장들과 만나 근조화환 처리를 요구했다가 항의를 받기도 했다.

전공노 관계자는 "고인은 개인 비리로 수사받던 게 아니다. 도의원들을 보좌한 죄로 곤욕을 치렀다. 자신들 보좌하던 공무원이 숨졌는데, 어떤 도의원도 추모 메시지는커녕 조화 하나 보내지 않았다"며 "사무처는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과 시간마저 빼앗으려 하는가"라고 항의했다.

전공노는 이 사태를 '국외출장비 부풀리기'라는 관행과 제도의 문제, 젊은 공무원을 벼랑 끝으로 몰은 조직의 문제 등 두 가지 사건으로 보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계속해서 요구하기로 했다. 김진경 의장과도 다음 달 2일 만나 진상규명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30일 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 공무원들이 경찰 수사를 받다 숨진 도의회 사무처 동료를 기리는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이승호 기자

앞서 도의회 7급 공무원인 A 씨(30)는 지난 19일 '국외 출장비 부풀리기' 의혹(업무상 배임 혐의)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하루 뒤인 20일 오전 10시 10분쯤 용인시 자택 주변에 세워진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건에 입건된 도의회 사무처 공무원은 A 씨 외에도 14명이 더 있다. 이들은 대부분 국외 출장 항공권·숙박비·관광지 입장료 등의 집행 실무를 담당했던 6~7급 공무원이며, 이를 지시하거나 결재한 과장급 공무원과 상임위원장, 의장 등은 입건되지 않은 상태다.

경찰은 지난 2022년 1월~2024년 5월 도의회가 국외 출장을 가면서 항공과 숙소, 유명 관광지 입장료 등의 경비를 부풀렸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점검 결과를 지난해 초 넘겨받아 수사하고 있다.

vv83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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