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울릉=김성권 기자] 거센 겨울 풍랑 속에서 기관 고장으로 울릉도를 향해 떠내려오던 6000톤급 러시아 화물선이 해경의 긴박한 대응으로 가까스로 충돌 위기를 넘겼다. 자칫 울릉도 연안을 덮칠 수 있었던 대형 해양 재난을 해경이 16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막아낸 것이다.
동해지방해양경찰청은 13일 "울릉도 북서방 약 44km 해상에서 표류 중이던 러시아 국적 화물선 A호(6204톤·승선원 14명)에 대해 긴급 안전조치를 실시해 현재 충돌 위험을 해소했다"고 밝혔다.
사건은 지난 12일 오전 8시 23분쯤 A호로부터 기관 고장으로 항해가 불가능하다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동해 전 해상에는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악천후 상태였다. 민간 예인선 투입이 추진됐지만, 기상 악화와 항행 구역 문제로 출항이 지연되는 사이 선박은 강한 바람과 해류에 밀려 남쪽으로 계속 표류했다.
위기감이 고조된 것은 13일 오전 10시경이다. 해경이 해수유동예측시스템으로 분석한 결과 A호가 그대로 표류할 경우 울릉도 해안 암초와 직접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나왔다. 대형 선박의 좌초나 침몰, 대규모 기름 유출로 이어질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동해해경청은 즉시 3017함과 1512함 등 대형 함정 2척을 현장에 급파했다. 1512함은 같은 날 밤 9시경, 높은 파도를 뚫고 A호에 예인줄을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예인 한계였다. 해경 함정의 최대 예인 능력은 5000톤급으로, 적재물을 포함해 1만 톤에 육박하는 A호를 완전히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해경은 선박을 직접 이동시키는 대신, 울릉도 방향으로 쏠리는 표류 경로를 틀어 시간을 벌기 위한 '방어 예인'이라는 고난도 대응을 선택했다.
14시간 넘게 이어진 긴장 속 사투 끝에 13일 오전 11시 강한 장력을 견디지 못한 예인줄이 끊어지는 아찔한 상황도 발생했다. 그러나 그 사이 바람과 해류의 방향이 남동쪽으로 바뀌면서 A호는 울릉도 해안 약 8km 지점에서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현장 해상에는 풍랑경보가 발효 중이지만, 해경 함정 2척이 A호를 근접 마크하며 24시간 감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승선원 14명은 모두 안전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인창 동해해경청장은 "대형 상선이 울릉도와 충돌할 경우 상상하기 힘든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며 "기상이 호전되는 즉시 민간 예인선과 공조해 안전 해역으로 이동시킬 계획이며, 그때까지 단 한 순간도 경계를 늦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응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 인도주의적 구조 원칙과 함께 울릉 주민의 생명과 환경을 최우선으로 한 해경의 선제적 위기 대응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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