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전주=김은지 기자] 내년 6월 3일 치러질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6개월여 앞두고 전북도교육감 선거전이 일찍부터 달아오르고 있는 가운데 <더팩트>는 도전 의지를 피력했거나 출마가 예상되는 이들을 만나본다.
세 번째 인물은 지난 10일 전북 교육감 출마를 선언한 노병섭 전국교육자치혁신연대 상임대표다. [편집자주]
지난 23일 오후 전북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에 위치한 선거 사무실에서 만난 노병섭 상임대표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학생과 교사를 위한 교육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 한 번도 교육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는 노 대표는 34년 동안 교실에서 호흡하며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교육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놓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전북 교육의 현실을 누구보다 오래 지켜본 사람으로서 약점, 가능성, 문제, 잠재력, 구조를 자가 진단처럼 알고 있다고 자평했다.
다음은 노 대표와의 일문일답.
-현장 교사 출신 이력을 부각하고 있는데 다른 후보와의 차별점이 있다면
저는 단순히 '교사 출신'이라는 이력이 아니라 34년 6개월을 교실에서 보낸, 정책을 설계하고 감당해 온 교사다. 수업을 준비하다 행정 업무에 치이고, 아이들 문제로 학부모와 상담하며 밤을 지새웠던 경험이 제 자산이다.
차별점은 분명하다. 저는 교육을 설계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문제로 경험해 온 사람이다. 그래서 정책을 볼 때도 이상적인 문구보다 교실에서 실제로 작동하는가를 먼저 묻는다. 현장을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감각, 그게 제 경쟁력이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는가
절대평가의 방향성에는 공감한다. 과도한 경쟁과 서열화를 완화하고, 아이들의 다양한 성장을 인정하자는 취지 자체는 옳다. 지금의 상대평가가 아이들을 지나치게 한 줄로 세워 온 것도 사실이다.
다만, 준비되지 않은 절대평가는 또 다른 불평등을 만들 수 있다. 학교 간 교육 여건 차이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 방식만 바꾸면 사교육 의존이 더 커질 수 있다. 평가 개편은 수업 혁신과 공교육 내실화가 함께 갈 때 의미가 있다고 본다.
-민주진보 후보 단일화에 관한 생각은
단일화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나서느냐보다 전북 교육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에 대한 합의다. 이름만 하나로 만드는 단일화는 오히려 유권자의 선택을 흐릴 수 있다. 민주진보 진영이 정책과 가치, 책임 있는 운영 원칙에서 충분한 공감대를 이룬다면 그 논의에 언제든지 참여할 생각이다.
-전북 교육, 어떻게 진단하나
전북 교육의 핵심 문제는 교육청의 부정부패와 전시행정, 일방적인 집행과 소통의 부족, 학교 현장에서 교육공동체의 붕괴 등이다.
교사는 학생의 성장과 발달, 교사로서의 전문성 강화와 생활지도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가장 먼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폭력 문제, 학부모 민원과 법적 소송 대응, 행정 업무처리 등에 시달리느라 교육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수 없는 실정이다.
또 교육철학의 원칙 부재도 교육 현장을 혼란으로 표류하게 하는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청은 먼저 부정부패 청산과 청렴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지속가능하고 내실 있는 교육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또 다양한 교육 주체와의 열린 소통으로 일방적인 행정 집행을 개선해야 한다.
전북 교육은 지금 현장과 행정 사이의 간극이 커진 상태라고 본다. 교실은 바쁘고 지쳐 있는데 정책은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이 간극이 교육의 피로를 키우고 있다.
또 지속성이 부족하다. 정책은 자주 바뀌고, 학교는 그때마다 적응을 강요받는다. 이제는 새로운 정책을 더 얹기보다 현장을 안정시키고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학생 수 감소가 가파르다. 학교 통폐합과 폐교 활용에 대한 생각은
학생 수 감소는 피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그러나 통폐합을 효율성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학교는 단순한 교육 시설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소규모 농산어촌 학교들이 폐교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실질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지난 국회에 상정된 바 있던 농산어촌교육지원 특별법과 같은 특단의 대책이 국정감사에서 수렴돼야 한다. 지자체의 과도한 교육 개입에 대한 제어도 이뤄져야 한다. 특히 김제시나 순창군처럼 지자체가 관립학원을 직접 운영해 소수의 학생들에게 특혜를 베푸는 것은 시정돼야 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가 나서서 교육양극화를 조장하는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통폐합은 반드시 지역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하며, 불가피한 경우에 폐교를 활용한 공동체 교육 모델을 제안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교육·돌봄·문화·평생학습이 결합한 공간으로 재활용하는 것이다. 소규모학교를 미래형 생태·마을 학교로 특성화하고,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교육과정으로 아이들에게 정체성과 자부심을 심어줌으로써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위치한 학교를 떠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AI 기반 및 온라인 공동 교육과정으로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줄이고, 돌봄·복지 서비스와 연계해 학부모와 아이들이 머물고 싶은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여론이 엇갈린다
고교학점제는 도입 취지와 달리 현장에서 공교육을 무너뜨리고 있다. 교사 증원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대안은 정치·재정적 현실 하에서 불가능하다는 점이 자명하다. 학생 주도 선택이라는 이상은 실제로 편식과 조기 전공화로 귀결된다. 이 과정에서 창의성의 토대는 약화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할 힘도 길러지지 않는다.
'고교학점제 정상화'를 위한 대안은 여러 가지가 제시되고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단연 교원 정원 확대다. 그러나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교사 숫자를 줄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개별 교사들의 업무 부담은 폭증하고 있다. 고교학점제가 추구하는 핵심은 학생들이 스스로 흥미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학습 동기를 높이는 것이다.
창의적 역량은 단순히 흥미 있는 과목을 파고드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웹툰 작가를 지망한다고 할 때 그림을 잘 그리는 기술은 출발점일 뿐이다. 좋은 작가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통찰, 인문학적 상상력, 과학적 상식, 다양한 분야와의 접촉을 바탕으로 주제를 발굴하고 스토리를 구성한다. 즉, 창작의 힘은 폭넓은 교양과 균형 잡힌 학습에서 나온다.
-초·중·고 교사의 정치 참여, 필요하다고 보는가
교사는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교사는 헌법이 보장한 시민의 권리를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교육정책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것까지 봉쇄해서는 안 된다.
학교에서 정치·시민 교육 제도화, 학생 정치 표현의 자유 보장, 지방선거나 주민참여제에서 만 16세 이상 청소년 참여 실험이 도입, 논의돼야 한다. 학생들이 교실과 마을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자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학생 참정권 보장 입법과 교육 현장의 민주화를 강력히 촉구한다.
더불어 교사들은 교육 개혁의 목소리를 정치권에 전달하려 하지만 외면당하고 있다. 교사의 목소리가 제도와 정책에 반영될 때 비로소 교육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교원의 정치 기본권 보장은 교육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되살리고 바로 세우는 길이다. 이에 법안을 즉시 처리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교육감 직선제가 시행된 지 18년이 됐지만 정작 교육을 책임지는 교원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강요를 받고 있다. 교원은 후보자 대한 지지나 비판조차 하지 못한 채 침묵을 강요받아 왔다. 그 결과 교육감 선거는 정책 경쟁이 아닌 정치적 색깔에 휘둘리고 있다. 내년 교육감 선거부터는 교원이 직접 출마할 수 있고, 자유롭게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적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전주 미산초서 악성 민원으로 인한 교권 침해 사건이 발생해 큰 논란이다. 그리고 해결 촉구 과정에서 교원노조 등의 일부 감정적 대응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요즘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 폭력의 문제, 학부모의 민원과 법적 소송 대응, 행정 업무처리 등에 시달리느라 교육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수 없는 실정이다. 최근 교사의 수업권이 침해되고, 교사의 인권이 말살되는 사건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가장 행복한 관계여야 하는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와의 교육 연대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교권 침해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교사가 안전하지 않으면 아이도 안전할 수 없다. 이 점에서 교육청의 책임은 무겁다.
다만, 해결 과정에서는 감정의 충돌보다 제도의 작동이 중요하다. 민원을 개인 교사가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교사를 조직이 보호하고, 민원은 시스템이 대응하는 구조를 만들겠다.
-전북 지역 학생과 학부모에게 한 말씀
교육은 학교만의 일이 아니다. 학부모는 '교육의 파트너이자 삶의 협력자'다. 아이의 성장에는 가정의 따뜻한 대화와 신뢰의 눈빛이 필요하다. 부모가 교사를 믿고, 학교를 신뢰할 때 아이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기관이 아니라, 삶을 품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는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와 시민이 함께 배우며 세대와 세대를 잇는 새로운 교육의 길이 열려야 한다.
학부모는 성적의 높낮이를 걱정하기보다 아이의 하루를 함께 돌아보며 '배움의 의미'를 되짚어야 한다. 학교는 부모를 감시의 눈이 아닌 함께 걷는 동반자로 맞이하고, 부모는 교사를 신뢰의 마음으로 바라봐야 한다.
또 학부모는 교육의 소비자가 아니라 공동체의 주체로 서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세우는 일이다. 가정의 따뜻한 손길과 학교의 열린 마음이 만날 때 아이들은 스스로 배움의 길을 찾아 나선다. 그 작은 신뢰가 교육의 토대를 단단히 세운다. 학부모는 가정 교육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관계 형성의 뿌리이자, 인성의 시작은 가정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학교와 교사만이 아니라 학부모와 지역 사회가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 정기적인 대화와 설문,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한 학부모들의 의견 수렴을 제도화해야 한다. 또한 학교운영위원회, 교육청 협의체, 주민 참여 예산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부모의 의견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정책 수립에 직접 참여할 기회도 보장해야 한다.
여기에 현장의 목소리가 충실하게 반영된 교육정책들이 수립돼야 한다. 학교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도 교육 현장이다. 학생, 학부모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교육의 현장이 될 수 있도록 소통방식과 정책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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