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여수=고병채 기자] 2012여수세계박람회가 끝난 뒤 남은 박람회장 문제는 단순한 시설 관리 수준이 아니었다. 국가가 주최한 국제행사였지만, 그 채무는 지역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구조로 방치돼 있었다.
국비 선투자금 3600억 원대 부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사후활용 주체는 누구인지, 공공성과 수익성은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등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사회는 10년 넘게 논의를 거듭했다.
이 긴 여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전환점은 주철현 의원이 추진한 특별법 개정이었다. 박람회장 사후활용 주체를 기존 재단에서 여수광양항만공사(YGPA)로 이관하고, 자산·부채를 명확히 이전해 책임 구조를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입법이었다.
이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수 년간 표류한 사후활용 문제를 국가·전남도·여수시·항만공사와 협의해 제도적 틀로 묶었고, 부채를 떠넘기려는 중앙정부의 기존 입장을 돌려냈으며, 일시 상환 요구 등 불합리한 조건을 막아내기 위해 국회·예결위·기재부를 상대로 지속적인 정치적 협상을 이어갔다.
그러나 2023~2024년 사이 '윤석열 정부'의 기획재정부는 "선투자금 3658억 원을 일시에 갚으라"는 요구를 들고 나왔다. 사후활용 계획도, 사업성도, 개발 축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등장한 이 요구는 사실상 지역을 압박하는 조치였다.
이때 앞장선 사람이 주철현 의원과 조계원 의원이었다. 두 사람은 '박람회는 국가행사였고, 선투자금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기조 아래 "채무 일시상환은 지역경제를 붕괴시키는 결정"이라며 국회 기자회견, 상임위 질의, 기재부 협의 등을 이어갔다.
결국 정부의 방침은 분할상환·재조정 체계로 후퇴했다.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여수시는 물론 항만공사마저 재정적 위험에 빠졌을 것이다. 지역을 위해 맞서야 할 때 맞선 정치, 이것이 주철현·조계원이 남긴 기록이다.
그런데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고, 부채도 이관되고, 사후활용 용역도 착수된 지금, 뒤늦게 ‘비전’이라는 말만 앞세우며 논박거리를 끄집어내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정작 지역사회가 10년 넘게 고민하며 쌓아온 합의는 꺼내보지도 않는다. 입법이 어떤 경로로 통과되었는지, 선투자금 일시상환을 누가 막아냈는지, 사후활용의 공공적 틀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조차 모른 채 '비전', '재검토' 같은 말만 쉽게 던진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은 하나다. 박람회장 채무를 본인이 책임질 깜냥이 있는가. 그럴 재정·정무·행정 능력이 있는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 현직 시절 그 능력과 성과를 충분히 보여줬다면 재선도 자연스럽게 됐을 것이다. 정치적 성과는 기록으로 증명되는 법이다.
박람회장 사후활용은 다시 공방의 장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여수는 이미 대전엑스포가 남긴 ‘부채 압박 → 민간매각 → 공공성 훼손’의 실패 사례를 알고 있다. 그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어렵게 마련한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공방이 아니라, 시민이 주도하는 사후활용이다. 용역 설계 단계부터 시민 참여를 강화하고 청년·산업계·전문가의 의견을 구조적으로 반영하며 여수의 해양도시 비전과 공공성을 함께 담아낼 장기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곳의 주인은 시민이며, 미래를 누릴 사람도 시민이며, 책임을 질 사람도 결국 시민이다.
그러므로 해답은 분명하다. 박람회장 사후활용은 반드시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 중심의 계획이어야 한다. 여수는 미래로 걸어가야 한다. 지나간 논쟁을 되감고, 이미 끝난 사안을 흔드는 데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앞으로의 10년, 30년을 바라보고 여수의 해양·관광·문화·미래산업을 담아낼 설계를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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