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베네치아, 인천'은 인천이 지닌 역사적, 문화적 자원을 바탕으로 미래형 해양도시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시리즈로서 <더팩트>와 인천학회(회장 김경배)가 공동으로 기획 연재한다. 2017년 9월 출범한 인천학회는 인하대, 인천대, 청운대, 인천연구원, 인천도시공사,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국내 최초의 지역학회로서 인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연구하는 지식공동체이다. 300만 대도시 인천의 도시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정책과 담론을 형성하고 다양한 해법을 찾아가는 학술 활동의 성과는 다른 도시에도 적용될 수 있는 국가 발전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동북아 베네치아' 제목은 글로벌 해양도시로서 관광, 물류의 세계 거점 도시를 향한 인천의 발전 가능성과 미래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연재는 인천의 잠재력을 재조명하고, 시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감의 장을 마련한다. 또 동북아 해양 네트워크의 중심 도시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이슈를 제공하고, 단순한 도시의 확장을 넘어 살고 싶은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는 어떻게 조성돼야 하는지 그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2년 전 동유럽을 여행했다. 크로아티아의 자다르 해안가에 울려 퍼진 '바다 오르간'의 연주 소리가 도시재생을 연구하는 나에게 신비로움과 설렘으로 다가왔다. 파도가 연주하는 혁신적인 건축물 '바다 오르간'은 자다르의 해안 재생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2005년 건축가 니콜라 바시치(Nikola Basic)가 도시재생의 아이디어로 설계한 예술 작품이자 악기다. 오늘날 자연친화적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168개의 보물섬을 자랑하는 인천은 바다와 연관된 역사적인 장소성이 많다. 하지만 바다를 이용한 수변 공간은 여전히 부족하다. 한 예로 '어촌뉴딜300 사업'의 일환으로 재생된 인천 옹진 대이작도는 특정 명소들이 있지만 큰 감흥을 주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섬 지역의 상징적 장소가 단순한 방문에 그치지 않고, 다시 찾아가고 싶은 관광·휴식 공간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자다르의 '바다 오르간'과 바로 옆에 조성된 원형 광장 '태양의 인사'를 모델 삼아 인천 내항 재개발과 관련된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실현 방안을 제안한다.
자다르는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방에 위치한다. 기원전 9세기 일리리아 부족이 정착한 이후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아드리아해 연안의 중요한 항구도시로 성장했다. 로마시대에는 도로, 포럼, 목욕탕 등 사회 인프라가 발달했으며, 현재 구도심에 로마 유적들이 남아 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 베네치아공화국의 영향을 받아 구축된 성곽과 방어 시설들은 자다르가 크로아티아의 중요한 역사 도시로 자리 잡게 된 요소들이다.
자다르의 현대적 재생은 크로아티아 독립전쟁 이후 본격화했으며, 새로운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힘입어 관광과 문화 도시로 변모했다. 1990년대 자다르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전쟁 이후 재건 과정에서 관광과 도시재생이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도시의 해안은 재생 사업의 핵심 구역이었으며, 단순한 복원 작업을 넘어 자다르를 차별화할 수 있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기술이 결합된 '바다 오르간'이 설계된 배경이다. 바람과 파도의 압력에 의해 다양한 파이프 음을 내는 오르간 소리는 도시의 오랜 역사를 감싸는 자연과 예술의 조화이다. 자다르의 해안 재생 시설은 단순한 고대 도시를 넘어 미래지향적이고 지속가능한 도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바다 오르간'은 자다르의 랜드마크로서 해안 재생의 상징이다. 지역 관광 산업에도 크게 기여하면서 전통과 혁신의 조화를 이루는 문화자산이 됐다. 바람과 파도 등 자연의 요소를 활용한 환경적 측면에서도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의 모범 사례다. 또 태양광을 설치한 광장 '태양의 인사'도 자연 에너지를 활용한 작품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두 예술 작품은 자다르 해안을 단순한 관광 명소가 아닌 환경친화적인 도시재생의 모델로 탈바꿈시키는 데 기여했다.
자다르 주변에는 300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다. 인구는 인천보다 훨씬 작은 7만 5000여 명에 불과한 도시이지만 201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동유럽 여행 코스에서 크로아티아를 가게 되면 자그레브, 스플리트, 두브르브니크, 플리트비체, 자다르 항구도시 등을 방문하게 된다. 반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하룻밤 정도 머물고 방문할 만한 세계적인 관광 명소를 찾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인천 내항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와 168개의 보물섬 활성화 계획은 민선8기 유정복 인천시장의 공약이다. 자다르처럼 자연친화적이면서 독창적인 요소를 도입, 인천 해안가와 내항을 성공적인 도시재생 모델로 변모시킬 잠재력은 충분하다.
자다르의 '바다 오르간', '태양의 인사'가 자연과 건축을 결합해 해안가의 매력을 발휘한 것처럼 인천의 해안가, 특히 내항 재개발 지역 1·8부두에도 자연의 힘을 활용한 예술적 설치물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제물포 해안가에 파도나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소리를 내는 조형물을 만들어 시민과 관광객에게 자연과 예술이 결합된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한다면 제물포 르네상스의 핵심 목표인 역사와 현대적 도시재생의 결합을 강화할 수 있다. 친환경적인 공공예술은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의 근간이 될 것이다.
자다르 해안의 '태양의 인사'도 거대한 태양 전지판과 LED 조명을 결합한 니콜라 바시치의 작품이다. 일몰 후에는 다양한 색상의 빛을 발산하며 일종의 시각적인 음악으로 표현된다. 인천 내항 재개발에서도 해질녘 바다 풍경을 활용해 빛과 관련된 설치물을 연상할 수 있다. 태양의 에너지를 활용한 설치물은 환경적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며, 낮과 밤 모두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해안가의 야경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에 도입하면 인천 내항의 매력을 발산하는 새로운 명소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다.
자다르 '바다 오르간'과 '태양의 인사'는 현대적인 공공예술 설치물임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오랜 역사와 자연 환경을 조화롭게 수용하고 있다.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에서도 유수한 역사를 간직한 내항의 배경을 고려하면서 현대적인 예술 작품을 배치하면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독특한 문화공간을 만들 수 있다. 자다르의 해안가에서 경험한 감동적인 예술 공간의 개념은 인천의 도시재생 프로젝트에도 접목할 수 있는 좋은 예시다. 또한 '바다 오르간'과 '태양의 인사'가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져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에도 영감을 줄 수 있다.
지난해 인천 내항에 소금창고를 재생한 복합문화공간 상상플랫폼이 개관했다. 상상플랫폼 내부 공공 공간에는 공연, 쇼핑, 외식, 갤러리, 카페, 교육 등 휴식과 즐길 거리가 들어섰다. 이와 함께 외부 공간에 바다를 즐길 수 있는 인천형 '바다 오르간'과 '태양의 인사'가 조성된다면 자연 환경과의 조화를 이룬 쾌적한 수변공간을 선보이게 될 것이다.
상상플랫폼 내부에서 바라보는 경관도 의미 있지만 내항 바닷가에서 하늘을 보고 바람과 햇볕을 느끼며 아름다운 오르간 연주를 들을 수 있다면 더 행복할 것 같다. 일몰 후 화려한 LED 조명 위로 노을을 담는 항구의 밤도 상상하게 된다. 개항의 도시 인천 내항의 역사적인 문화와 장소성을 살려 휴식과 레저의 공간을 조성해 도시의 경제·문화적 가치를 높이는 수려한 수변공간의 탄생을 기대한다. 인천 제물포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이정표 중 하나가 자다르에 있다는 생각이다.
글=염현숙 인천미래도시재생연구소 소장·기획=김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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