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군위=정창구 기자] 경남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일대는 끝이 보이지 않는 논·밭, 딸기 하우스 등은 흙탕물로 뒤범벅이 되어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물이 빠진 자리에는 부서진 비닐하우스 잔해물과 쓰러진 작물들이 널브러져 있고, 침묵처럼 무거운 공기 사이로 사람들의 삽질 소리만이 묵묵히 들린다. 그 한가운데, 군위군새마을회원 40여 명이 망가진 농경지를 복구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이 땅이 다시 살아나야, 이 마을도 다시 살아납니다." 28일 이른 아침부터 복구작업에 나선 박영록(62) 새마을지도자 군위군협의회장은 함께 봉사활동에 나선 회원들을 다그쳤다.
박 씨의 손에는 삽 대신 긴 고무호스가 들려 있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진흙 속에서 그는 배수 작업을 맡았다. 빗물과 함께 밀려온 부유물로 막힌 배수로를 뚫고, 썩은 물이 다시 논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그와 몇몇 회원들의 임무였다.
이날 작업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다. 침수된 농지 배수, 토사 제거 및 쓰레기 수거, 시설물 복구.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은 배수 작업이었다. 수압으로 물을 빼내는 펌프가 곳곳에서 돌아갔고, 사람들은 호스 끝을 들고 고랑을 따라 이동했다.
태양은 머리 위에서 작렬하고, 논바닥은 아직도 질척였지만 그 누구도 허리를 곧추세우지 않았다.
"마을 어르신들이 일평생 가꿔온 땅이에요. 이걸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와야죠."
이금조(61) 군위군새마을부녀회장은 침수된 하우스 안에서 부패한 작물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천장은 찢어진 데다 뿌리째 뽑힌 딸기 줄기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이 씨는 땀에 젖은 손으로 천천히 가지를 걷어내며 "이게 생계인데, 다시 심어 열매를 맺기까지 얼마나 가슴이 무너질까"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은 마치 '농부의 마음'을 함께 나누는 듯했다.
"지금은 고된 일이지만, 이런 땅이 다시 푸르게 피어나면 우리도 같이 기쁨을 나눌 수 있을 겁니다."
박택관(66) 군위군새마을회장은 "이번 지원 활동을 군위군민들의 정성과 응원의 뜻으로 봐달라"며 "자연이 망가뜨린 것을 인간의 손으로 다시 되살리는 과정이다. 앞으로도 재해 현장에는 가장 먼저 발 벗고 달려 갈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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