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대구=박병선 기자] 홍준표 대구시장은 5일 페이스북에 "요즘 아침에 눈 뜨면 또 이사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참 심란하네요"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지난번 대구로 하방한 게 24번째 이사였는데 3년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면 나는 nomad(유목민) 이상도 이하도 아닌 대한민국 방랑자입니다"라고 썼다.
지난해 12월 23일 자 페이스북에도 "nomad 인생입니다"라고 운을 뗀 후 "또 이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연말이 뒤숭숭하네요"라고 썼다.
페이스북만 보면 홍 시장은 '12월 23일부터 3월 5일까지' 무려 두 달 넘게 '이사할 생각만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시민들이 보기에는 대권 도전에 나선 홍 시장이 '마음은 이미 떠나고, 몸만 남아 있는' 상태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5일 대구시청 산격청사에 가보니 홍 시장과 정장수 경제부시장이 자리를 비운 탓인지 썰렁해 보였다. 판이 거의 끝나가는 '파장 분위기' 비슷해 보였다.
홍 시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대해 단식 농성 중인 박수영 의원을 찾아 위로하고 기자들과도 만났다. 시정과는 전혀 관계없는, 대선을 염두에 둔 행보다.
정 부시장은 며칠째 '대구경북신공항' 관련 업무차 서울 출장 중이라고 하는데,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었다.
정 부시장은 홍 시장의 비서관 출신으로 향후 대선 캠프에서 업무를 총괄할 것으로 알려져 본격적인 선거 준비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구시에는 홍 시장이 취임 후 별정직 공무원으로 데려온 측근이 14명 포진해 있는데, 이들의 행보도 관심거리다.
이들의 존재로 인해 한 시민단체는 대구시 전체를 '홍 시장의 거대한 선거 캠프'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한 얘기다.
'대구시의 핵심'으로 활동한 이들 가운데 핵심 몇몇은 며칠 전 사표를 냈는데, 시장이 보관하고 있다느니 언제 일괄 사표를 낼 것이라는 둥 확인되지 않은 소문만 시청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탄핵심판 선고가 1, 2주밖에 남지 않다보니 '탄핵 인용' 시 곧바로 선거캠프를 꾸려야 하는 홍 시장 측은 몸과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듯하다.
대통령의 꿈을 성취하려는 홍 시장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대구시장 자리는 그 정도 가치밖에 없는 것인지, 이렇게 버리고 가도 되는 것인지, 개인의 성공을 위해 잠시 스쳐 가도 되는지 온갖 상념이 떠오른다.
홍 시장은 지난달 26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내가) 대구시에 내려가 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첫째 대구시정을 마무리 지으면 남는 시간에 대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언제 (대선을) 하더라도 준비를 다 해놔야 한다"고 말했다.
역대 시장들은 시장직 하나만으로 이런저런 비판을 받곤 했는데, 홍 시장은 거기에 대선 준비까지 하는 '멀티 태스킹'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홍 시장이 능력자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전통적인 시장의 책무를 생각할 때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자리를 내놓는 것을 두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대구시장 자리는 대선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라거나 '시정을 하면서 공공연하게 대선 준비를 해왔다'는 말은 시민들의 자긍심을 해치는 언행임이 분명하다.
사퇴하는 그날까지 언행을 삼가며 시민들에 대한 예의를 잃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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