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소설집 ‘길목의 무늬’ 출간


“연대와 치유의 힘에 대한 신뢰로 ‘세계의 그늘’을 바라보는 시선 돋보여”

2022년 목포문학상 남도작가상을 수상한 김성훈 작가가 첫 소설집 길목의 무늬를 펴냈다.문학들 출판사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2022년 목포문학상 남도작가상 수상으로 등단한 김성훈 소설가의 첫 소설집 ‘길목의 무늬’(문학들)가 출간됐다.

소설집에 실린 첫 번째 작품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사람’이다. "책을 통해 울어 본 사람은 책을 쓰게 되어있다"라는 소설의 첫 문장이 암시하듯이, 세상의 그늘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모든 작품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사람’은 소설가 김종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해남으로 출장을 가게 된 주화가 화자다. 주화는 김종수의 대학교 2년 후배였기에 인터뷰를 위해 해남으로 내려가는 과정 동안 대학교에서 만났던 선배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고, 만났을 때 어떤 질문을 해야 좋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다가 등단까지의 그의 삶과 아직 등단하지 못한 자신의 삶을 비교한다.

작가 김종수는 고아였다. 가정교회 골목에서 생을 시작했고, 교회의 터를 잡고 벽돌을 쌓아올린 장로들과 버림받은 아이를 발견한 목사 사모님이 그의 의부모와 마찬가지였다. 친부모에게서 부정당하고 유기되었다는 사실 속에서 김종수는 소설 쓰기를 통해 꿈을 이루고 스스로를 구원한다.

그리고 아직 등단하지 못한, 출판사에서 편집자 일을 하고 있는 주화는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유산된 아기를 제거하는 소파 수술을 받았다. 의붓아버지의 씨앗이었으며, 그녀의 아이이자, 그녀의 동생이기도 했다. 그녀는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갔다.

작가의 등단작이자 소설집의 표제작인 ‘길목의 무늬’는 전라남도 목포의 '가난을 머리에 이고 지고 사는 동네, 다순구미'가 배경이다. 재개발 지역으로 규정된 폐허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화자 역시 버려진 아이다. 그러나 김성훈의 소설은 버려진 아이의 비극적 삶만을 언급하진 않는다. 분명 ‘파시’에서 몸을 팔던 어머니의 직업과 실종은 화자에게 주홍글씨이자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다.

문학 평론가 김영삼은 “세계의 그늘을 바라보는 작가의 일관된 눈길은 제 몫을 부여받지 못하고, 제 이름을 얻지 못하고, 경제와 사회의 셈법에서 뺄셈의 대상이 된 채 쓰이고 버려지는 삶들을 향해 있다”고 평했다./문학들

그러나 그는 "우짜든지 너랑 나는 잘 살아야 해"라고 말한 아버지, "휴학, 복학, 취업, 명예퇴직, 재입학의 단어가 빚어낸 내 세월을 흉금 없이"라고 털어놓을 수 있었던 달순 엄마가 있었기에 외로움과 자기비하를 이겨낼 수 있었다. 다순구미와 같은 버려진 장소와 얽힌 비극적 서사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삶의 지층을 쌓는 과정으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전라남도 여수가 배경인 ‘정오의 끝자리, 빛’ 이나 경남 마산을 배경으로 쓴 ‘홍콩빠 이모’ 또한 버려진 아이들의 서사와 한국 사회의 국가 폭력에 대한 혐오를 적나라하게 벗겨낸 대표 사례들이다.

‘정오의 끝자리, 빛’ 에서는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꼬리표로부터 평생 자유롭지 못했던 10·19 여순사건의 희생자 이야기를 담았다. ‘홍콩빠 이모’ 는 이승만 독재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에 항거한 마산 3·15 의거와 관련된 이야기다. 소설이 생략한 홍콩빠 이모 김명자 씨의 아들은 훗날 부마항쟁과 5·18민주화운동으로 기록된 한국현대사의 어두운 비극으로 귀결될 가능성을 예고한다.

세월호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심리상담사의 이야기인 ‘곁’ 또한 타인의 상처와 주체의 상처가 서로 마주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점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렇듯 버려진 아이들의 구조 요청에 기꺼이 응답하는 환대와 연대의 힘, 국가 폭력 이후 유예되고 미완된 애도 작업이 바로 김성훈의 소설 쓰기다.

문학 평론가 김영삼은 "세계의 그늘을 바라보는 작가의 일관된 눈길은 제 몫을 부여받지 못하고, 제 이름을 얻지 못하고, 경제와 사회의 셈법에서 뺄셈의 대상이 된 채 쓰이고 버려지는 삶들을 향해 있다"고 평했다.

김성훈은 1984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목포대학교 국어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2022년 목포문학상 남도작가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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