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근로정신대 1차 소송 원고 김성주 할머니 별세


14세 끌려가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 제작소서 고된 노역
2023년 정부 회유로 제3자 변제금 받아

5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1차 소송 원고 김성주 할머니가 향년 95세로 별세했다. 사진은 2018년 김성주 할머니가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취재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모습. /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더팩트 l 광주=나윤상 기자]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1차 소송 원고 김성주 할머니가 5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6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전남 순천이 고향으로 순천남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만 14세 나이에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해서 중학교도 갈수 있다"는 일본인 담임 선생님의 권유와 강압에 의해 주위 또래 친구들과 함께 일본으로 갔다.

하지만 일본에서 도착한 곳은 학교가 아닌 비행기를 만드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공장이었다. 굶주림 속에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고된 노동을 강요받았다.

일본 생활에서 김 할머니가가 얻은 것은 왼쪽 검지 손가락이 잘리는 부상과 1944년 도난카이(東南海) 지진으로 얻은 발목 부상이었다.

해방 후 구사일생으로 고향에 돌아왔지만 ‘정신대’ 출신이라는 주위의 손가락질과 결혼 후 남편에게도 온갖 인신모욕과 구박을 받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당시만 해도 '정신대' 출신을 일본군 '위안부'로 잘못 알고 있을 때였다.

김 할머니는 "내 평생 가슴 펴고 큰 길 한번 다녀 보지 못하고, 뒷질(뒷길)로만 뒷질로만 살아왔다"고 말했다.

뒤늦게 용기를 내 양금덕 할머니 등과 함께 일본 소송에 나섰지만 2008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끝내 기각됐다. 일본 정부는 2009년 김 할머니 등 일본 소송 원고들에게 뒤늦게 후생연금 탈퇴수당금 명목으로 99엔을 지급해 비난을 샀다.

그 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전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의 도움을 받아 2012년 10월 일본 소송 원고들과 함께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6년여 만에 2018년 11월 29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최종 승소의 기쁨도 잠시 일본 아베 정권은 한국 대법원 판결을 빌미로 2019년 한국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조치를 취하면서 한일 간 외교적 마찰이 시작됐다.

미쓰비시 측은 일본 정부의 압력에 배상 이행을 거부했다. 원고 측은 미쓰비시중공업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단행했고, 김 할머니도 미쓰비시중공업 특허권 2건을 압류했다.

2022년 윤석열 정권 취임 이후 대일 외교 기조가 바뀌면서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정부는 한일관계 개선을 구실로 2023년 3월 강제동원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다.

2023년 3월 7일 김 할머니는 제3자 변제를 거부하는 양금덕 할머니와 함께 국회에서 열린 강제동원 정부 해법 강행 규탄 및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긴급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 뒤 김 할머니는 정부의 회유 등 여러 이유로 기존 입장을 바꿨다. 결국 지난해 5월 정부에서 대신 지급하는 소위 ‘판결금’을 수용하고 동시에 미쓰비시중공업 특허권 압류도 취하했다.

유족으로는 2남 2녀가 있으며, 빈소는 안양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월 7일 오후 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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