뺨 발그레한 귀농 청년의 '볼 빨간 딸기'…"한번 먹으면 평생 못 잊을 맛"


청도군 농사꾼 정광훈 씨 SNS 스타로 떠올라
7년 딸기 농사에 매진…'연매출 2억' 열매 맺어

뺨 발그레한 귀농 청년의 볼 빨간 딸기로 알려진 청년 농부 정광훈(35) 씨가 딸기를 수확하며 활짝 웃고 있다./청도=김민규 기자

[더팩트ㅣ대구=김민규 기자] "그걸 왜 물어봐? 네가 알아서 해야지."

태어나 처음으로 문전박대를 겪었다. 그것도 고향에서. 2017년 가을의 일이었다. 정광훈(35) 씨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돌아올 마음이 없었다. 대기업에서 '잘 나가는' 기술자였다. 고향에서는 '출세한 촌놈' 대접도 받았다. 그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 건 아버지 때문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아버지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 한 통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전화를 받고 바로 일(대기업)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건 아니었다. 처음엔 '아버지가 쓰러지셨으니 삽자루 잡는 시늉이라도 해야지'하는 마음이었다. 삽자루 잡은 김에 좀 더 잘하고 싶어 이웃들을 찾아다니며 농사법과 관련해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버지의 딸기 농사를 더 잘 지어보고 싶었던 거였다.

돌아온 이웃들의 대답은 "그런 건 물어보는 게 아니다"였다. 농촌도 대기업 못잖게 경쟁 구도가 팽팽했다.

정 씨는 "어느새 7년, 딸기 농사로 2억 원의 연매출을 올리는 '청년농부'가 되기까지 타향살이보다 더한 고향살이를 경험했다"면서 "도시 못잖은 경쟁이 있고, 경쟁에서 이기면 도시 이상으로 두둑한 보상이 주어지는 곳이 농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농사짓는 법을 물으러 다니던 '볼 빨간 청년'은 SNS 스타 청년농부로

그가 수확하는 딸기의 품종은 '금실'이다. 당도와 경도가 유달리 높다. 값이 비싸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내놓기가 무섭게 팔려 나간다. 그가 재배하는 초당옥수수와 자두 역시 차별화된 맛과 품질로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주말이면 직접 차를 몰고 농장으로 찾아오는 단골 손님들도 적지 않다.

최근 들어 농사 제대로 짓겠다는 마음으로 그에게 노하우를 물어오는 농부들이 부쩍 늘었다. 그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아는 건 다 알려드리는데, 세상에 저보다 뛰어난 고수들이 많습니다. 고수들의 비밀을 하나하나 모아서 자신만의 노하우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청년 농부 정광훈 씨가 자신의 하우스에서 딸기를 재배할 토양을 확인하고 있던 중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고 있다./청도=김민규 기자

본인이 그랬다. 귀향 초기 산지식에 대한 갈증을 풀려고 트럭에 캔 커피를 가득 싣고 경북권 내 딸기 농사를 짓는 곳을 찾아다녔다. 딸기 농장이 보이면 캔 커피를 내밀며 "딸기 농삿법을 가리켜달라"고 매달렸다.

하지만 대부분 박대했다. 그래서 지역의 농업기술센터도 모조리 훑었다. 재배법은 고사하고 농작물 재배 메뉴얼도 없었다. 그러던 중 김천농업기술센터에서 "A면의 노 씨 영감님 집을 한번 찾아가 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지성이 감천한 순간이었다.

◇대뜸 삽자루 잡고 사흘 동안 머슴살이

정 씨가 찾아간 곳은 김천의 한 농가였다. 깡마른 노인이 나왔다. 대뜸 일을 거들라며 괭이를 정 씨 앞에 던졌다. 며칠간 일을 거들며 노인의 집에 머물렀다. 며칠 후 노인은 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낡은 다이어리를 내밀었다. 낡은 다이어리는 노인이 그간 농사를 지으면서 기록한 '영농일지'였다.

노인은 "눈에 간절함이 그렁그렁 맺혀있어서 보여 주는 것"이라며 "이것만 있으면 농사로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 농사에 뛰어든 그는 가을이면 황금 같은 열매가 열릴 것으로 생각했지만 열매는커녕 줄기조차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천하의 비법서처럼 느껴졌던 영농일지가 휴지 조각으로 보였다. 노인에게 '속았다'고 생각하며 망연자실해 있을 때 누군가 '온도에 민감한 작물일수록 환경 제어를 해줘야 한다'고 귀띔해 줬다. 또 모든 농작물은 2~3년이 지나야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농사의 기초를 다지자 영농일지에 적혀있던 말들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농사를 짓는 데 가장 요긴한 정보들이 '정답지'처럼 일목요연하게 수록되어 있었다. 특히 과일의 당도를 결정하는 것은 아미노산인데 '횟집에서 버려지는 생선을 모아 거름으로 쓰면 좋다', '막걸리와 설탕을 발효시키면 농작물의 상품성을 높일 수 있다'는 내용은 상품성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알파벳도 모르면서 영어시험 컨닝하려고 한 거죠. 농사의 기초를 알고 나니 뒤는 절로 해결되더라고요. 딸기는 주인 발자국으로 큰다는 말을 제대로 느꼈습니다."

정 씨는 농사도 과학이 접목되야 한다며 온도를 일정하게 맞추고 토양의 질까지 확인해야 농작물의 품질이 높아진다고 말하고 있다./청도=김민규 기자

그의 첫 수확물은 '금실딸기'였다. 보편적인 설향딸기에 비해 재배 비율이 낮다. 재배와 관리가 까다롭지만 맛과 당도는 견줄 수 없는 품종이다. 전국 재배율이 3% 내외다. 그중 80% 이상이 경남에서 출하된다. 정 씨는 청도에서 금실딸기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농부다.

그가 금실딸기를 출하하자 주변에서 브랜드를 만들라고 제안했고 자신의 얼굴과 닮은 '볼 빨간 딸기'라고 이름을 붙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 매장을 열었다. 인기에 힘입어 몇 년 사이 지역을 대표하는 딸기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청도군 덕에 귀농 성공하게 된 사연

"청도군의 지원 덕에 ‘볼 빨간 딸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금실딸기는 온도와 병충해에 민감한 데다 수확량이 많지 않아 많은 이들이 재배를 꺼리는 품종이다. 그는 영농일지를 통해 얻은 노하우와 청도군의 지원 덕분이라고 밝혔다. 특히 하우스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온도제어장치의 일부를 군에서 지원을 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군청밖에 의지할 곳이 없더라고요. 매일 부서를 찾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자신의 일처럼 지원책과 도움을 준 것은 정말 잊지 못할 겁니다."

정 씨가 자신의 캐릭터가 붙어 있는 컨테이너 옆에서 엄지를 치켜세우며 카메라를 보고 있다./청도=김민규 기자

최근에는 팜스토어를 위한 컨테이너 지원 사업을 통해 하우스 옆에 컨테이너 숍도 오픈했다. 그 덕분인지 매출은 두 배로 뛰었다. 그의 팜스토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인플루언서를 중심으로 공유되고 있다. 그는 청도군과 함께 '청년 귀농사관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과 같은 이들이 귀농을 결심했을 때 농사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고 귀농자들과 군청의 연결고리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최근 청도가 안 좋은 뉴스가 많이 나오는데 농민들 입장에서는 한쪽 면만 부각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누구보다 농민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적극 지원해 주는 청도군이 있었기에 귀농하는 이들도 늘고 관광객도 모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년과 농업, 관광에 대해서만큼은 청도군이 누구보다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사례로 남아 청도군이 청년 농사꾼이 붐비는 곳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청도군은 귀농 창업지원과 정착지원에 관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농민사관학교를 통해 전문농업인을 육성하고 지역 농업 특화 발전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하수 청도군수는 "귀촌을 원하는 이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사업과 체계적인 프로그램과 청년 농업정책까지 발굴하고 있다"며 "농업이 1차 산업이 아닌 5차 산업으로 바뀔 수 있는 패러다임을 구축, 청도군이 농업 특성화 지역으로 거듭나 인구 유입까지 되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하수 청도군수가 산딸기 경작지를 찾아 농민들과 함께 수확하고 있다./청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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