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급변하면서 다양한 직업이 사라지고 있다. 그중 특정 분야의 경우 '더 이상 기술을 배울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일부는 장인들을 통해서 힘겹게 기술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지만 옛 명성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구는 한때 '섬유 도시'라고 불렸지만, 이면에는 '기술의 도시'라고도 불릴 만큼 다양한 기술자들이 존재했다. 한때 대구 지역에서 가죽수선부터 구두수선, 시계수리, 맞춤양복, 열쇠 등의 기술로 명성을 날렸던 숨은 고수들을 만나 역사와 현재 상황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더팩트ㅣ대구=김민규 기자] "못 따는 열쇠가 없다는 소문에 경찰이 찾아와 전과 조회까지 하더군요. 하하하(웃음)."
대구 북구 대구종합유통단지 산업용재관 길 한편에는 7㎡가 채 되지 않은 컨테이너가 있다. 이곳에는 ‘길가이버(맥가이버+길거리+길병성)’로 불리는 길병성(64) 씨가 30여 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구두 수선부터 도장파기, 열쇠수리까지 만능 재주꾼으로 통하지만 주 종목은 열쇠 수리다. 못 따는 열쇠가 없다는 소문 탓에 그의 매장에 ‘출장 중’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것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 "먹고살기 위한 생업, 아슬아슬한 줄타기였죠"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그는 고등학교 때 극빈자를 대상으로 한 직업교육을 받고 삼성전자 개발팀에 특채로 입사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병환으로 쓰러진 후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 돈을 벌어야 했던 그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 열쇠 수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기술자들이 대우를 받는 시대였다. 하지만 이른바 '시다'(보조원:したばり) 생활 몇 년을 해야 기술을 조금씩 가르쳐 주는 것이 관례여서 제대로 된 기술자 구실을 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하지만 길 씨는 ‘시다’ 생활이 얼마 지나지 않아 중급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실력이 뛰어났다.
"선배들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분해 해놓은 걸 유심히 보고 못 쓰는 열쇠를 집에 갖고 가 연구했죠. 못 쓰는 열쇠나 버리는 열쇠가 큰 스승이더라고요. 상가를 돌며 고장 난 열쇠를 수거해갔더니 정보과 형사가 찾아온 적도 있었습니다."
남보다 빨리 기술을 배운 덕에 20대 때 작은 매장을 차릴 수 있었다. 열쇠만 수리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금고와 대형 자물쇠까지 배우려 했지만, 학원은커녕 배울 사람조차 없었다. 당시만 해도 이런 계통은 외국계 대기업 일부만 아는 극비사항으로, 공식적으로 기술을 배울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지인 소개로 한 노인으로부터 금고와 대형 자물쇠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유독 말이 없던 노인은 길 씨에게 '손끝은 종이 개수를 가늠해야 하고 귀는 개보다 예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별다른 기술이 없어 보였던 노인의 기술은 평범했지만, 손과 귀의 감각으로 자물쇠를 연다는 것이었다. 짐작은 했지만, 그 노인은 한때 이름을 날렸던 그쪽 계통 '기술자' 출신이었다.
"모든 열쇠의 기본 원리는 같은데 방식의 차이였죠. 그걸 감지하기 위해서는 손끝이 열쇠 내부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미세한 소리의 차이도 파악해야 했습니다. 그 분 덕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좋은 쪽으로 쓰지 않으면 말년이 비참해질 수 있다'는 노인의 마지막 말은 항상 새기고 있습니다."
창과 방패까지 다 갖춘 그를 찾는 이는 점점 늘었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일거리가 줄기 시작했다. 열쇠가 디지털로 바뀌면서 전자식 도어나 스마트 시동 등 모든 분야가 첨단화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유튜브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한편에 컴퓨터를 놓고 해외 영상이나 자료를 보면서 디지털 열쇠를 연구했다. 외국어는 몰랐지만 내부 구조나 작동법만 보면 원리를 충분히 이해했다. 못 쓰고 고장 난 디지털키는 그의 가장 좋은 스승이었다. 그 덕에 그는 대구에서 전자식 열쇠나 잠금장치에서도 인정받은 기술자로 알려졌다.
◇ 수작업은 절대 위조 불가…사람이 기계를 능가하는 10%의 비결
그는 자동화나 전자제어장치가 발달해도 손 기술은 절대 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열쇠 분야만 아니라 대구에서 수작업으로 도장을 파는 몇 안 되는 기술자다. 최근 자동화로 도장을 파지만 그는 수작업을 고집한다.
그의 매장을 찾는 이들은 열쇠를 잃어버려 수갑을 못 푼 경찰부터 기업 문서 보관실, 관공서까지 다양하다. 위급순간에 그의 진가를 발휘했을 때도 있었다.
10여 년 전 아파트 디지털 열쇠가 고장나는 바람에 신생아가 갇혔을 때와 치매노인이 대형 냉동실에 들어가 문을 잠궜을 때도 신속하게 문을 개방해 인명을 구조한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것. 물론 비밀서약까지 받고 출장 수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이 도저히 못 푸는 것도 있다고 한다.
"기계로 만든 도장의 경우 위조가 가능하지만, 수작업은 절대 위조가 불가능하죠. 이 수작업이야말로 사람이 기계를 능가하는 10%의 비결이 아닐까 합니다. 화투에서도 '한 끗'이 결정타를 날리듯 기술 분야에서도 10%를 위해 존재하는 기술자들이 있는 한 '쟁이'들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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