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대구=김민규 기자] "영화 세트장도 이거보다 튼튼하게 짓는다는데…."
지난 10일 경북지역 집중호우로 임진왜란 때 왜군과 맞선 기개를 그대로 복원했다던 '성주읍성'이 함락됐다. '왜군'이 아니라 130㎜ 호우에 무너진 것이다.
토사는 빗물에 무너지고 대형 석재로 만들어진 성벽은 힘없이 함락됐다. 시민들은 준공된 지 4년도 채 되지 않은 복원 문화재를 보며 영화세트장보다 못하다는 자조섞인 한탄을 내뱉었다.
성주역사테마공원은 2020년 성주군이 100억 원의 가까운 예산을 들여 조선시대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대대적으로 자랑하던 곳이다. 그중에서도 임진왜란 때 왜군과 맞선 선조들의 용맹함을 재현했다던 '성주읍성'은 성주군의 마스코트나 다름없었다. 전통 방식으로 그대로 만들었다며 역사적 가치까지 자평하면서 문화유산 반열에 올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호우에 이런 모든 '자랑'들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성주군의 '대처'는 전광석화였다. 누가 볼세라 무너진 토사더미 등에 파란색 비닐을 덮고 주변을 노란색 띠로 둘러 접근을 금지시켰다.
그게 다였다. 부끄러움에 대한 대처가 발빠르게 이뤄진 것과 대조적으로 2차 붕괴 우려와 시민들의 안전 문제에 대한 대처는 아직 이렇다 할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 않다. 그러는 사이 부끄러움은 성주군민의 몫으로 남고 있다.
인간문화재가 만드는 화살은 145m까지 간다고 알려져 있다. 실학자 홍대용은 1765년 중국에 갔다가 "조선 활은 중국 것과 비교해 10배는 멀리 날아간다"고 말했다가 실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당시에 벌써 중국인의 입장에서 믿지 못할 정도로 조선 활의 성능이 뛰어났던 것이다. 지금 만일 조선 활을 재현한다고 해놓고는 실제로 국궁의 10분의 1밖에 못 날리는 활을 만든다면 그걸 재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같은 맥락에서 역사적 가치까지 언급되던 성벽이 드라마 세트장만도 못하면 그것을 성벽의 재현이라 할 수 있는가. 기술이 나아진 지금은 오히려 조선시대보다 더 강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100억 원의 혈세가 투입된 공원에서 이 같은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기상청은 올 경북의 장마는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라고 밝혔다. 평년보다 많은 비가 올 가능성을 예고했고 경북 내륙 지역은 집중호우 가능성까지 예견됐다. 앞으로도 더 많은 비가 예상되는 데도 성주군은 "안전 진단을 요청해 놓은 상황"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시민의 안전과 2차 붕괴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귀를 막은 손을 여태껏 떼지 않고 있다.
빗물에 무너지는 성벽을 보면서 역사를 배우는 아이들은 임진왜란 때 우리 조상들이 고생한 이유를 장마라고 생각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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