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국제민중법정②] "미국의 1945년 원자폭탄 투하, 국제법상 완전한 불법"


제2차 국제토론회서 미국·스위스 등 교수·학자 모여 열띤 토론
찰스 교수 "미국 핵무기 확장 억제, 다 같이 공멸하자는 이야기"

지난 8일 히로시마 국제회의장 코스모스 홀에서 원폭국제민중법정 제2차 국제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은 인사말을 하고 있는 고영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공동대표 / 히로시마 = 나윤상 기자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인 '리틀보이'가 투하됐다. 미국은 전쟁을 조기에 종식시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리틀보이'로 인해 45만 명이 다치거나 죽었다. 이후 미국은 일본을 피해국으로 감싸안으면서 가해국의 오명을 숨겨 주었다. 그런 역사 속에서 지워진 약 10만 명의 조선인 피해자들이 있다. 79년의 세월 속에 잊힌 그들의 명예는 회복할 수 있을까? <더팩트>가 6월 7~8일 일본 히로시마 열린 '원폭국제민중법정 제2차 국제토론회' 현장을 찾아갔다. [편집자주]

[더팩트 l 히로시마=나윤상 기자] 지난 8일 히로시마 국제회의장 코스모스홀에서 1945년 미국의 핵무기 투하의 책임을 묻는 '원폭국제민중법정 제2차 국제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의 주제는 명확했다. 1945년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원자폭탄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와 국제인도법 및 국제관습법으로 미국의 원폭 투하의 불법성을 확인하고 이를 법정에 기소할 수 있는지를 논의했다.

토론회에는 천주교 제주교구장을 지낸 강우일 주교, 민중법정 원고로 나선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 한국 원폭 피해자 1세인 이기열 씨, 이태재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회장 등 한국, 미국, 스위스, 뉴질랜드에서 온 법률인, 교수,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최대 3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코스모스홀은 청중들로 가득 찼다. 일본 언론들도 전날 열린 한국⋅조선 원폭피해자 위령제에 이어 높은 관심을 보였다.

토론회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동시통역으로 진행됐다.

◇︎원폭 투하 죄의식 없는 미국…한국 원폭 피해자 3중 고통받아

미국의 원폭 투하의 역사적 책임에 대한 주제를 발표한 오은정 강원대 문화인류학 교수는 2016년 당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해 한 연설에 주목했다.

오 교수는 "2009년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선언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오바마 대통령이 2016년 히로시마에서는 '71년 전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아침, 하늘에서 죽음이 떨어졌고 세상이 변했다'고만 말해 핵무기 투하 주체를 언급하지 않은 점은 우연이 아니다"면서 "당시 미국과 유럽연합을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진 세계 질서와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는 정확히 한반도 분단 체제라는 구조적인 조건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의 지적은 미국의 원폭 투하 후 해방과 동시에 이뤄진 냉전체제 아래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에서 한국 원폭 피해자들의 희생은 불가피한 희생으로 정당화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일컫는다.

또 원폭 투하 주체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미국은 가해자로서의 자각이 없고, 연장선상에서 피폭자의 존재와 피해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미국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핵무기를 투하하지 않았다면 더 큰 전쟁으로 확산됐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제1주제는 1945년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에 대한 역사적 의미에 대한 발표와 토론을 벌였다. 사진은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오은정 강원대 문화인류학 교수. / 히로시마 = 나윤상 기자

오 교수는 "한국 원폭 피해자들은 미국이 가한 원폭에 의해 희생당한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 미국을 범죄자로 지적하는 순간 공산주의자와 결탁한 간첩행위자로 몰려 자신들의 피해에 대해 침묵을 강요당해야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한국 원폭 피해자들은 결코 침묵한 적이 없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왔다"면서 "지금이라도 국제토론회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장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이제 한국의 원폭 피해자들이 미국과 일본의 책임, 그리고 한국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인종주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냉전체제 하의 반공주의, 그리고 원자력 기술신화 문제를 제기해야 할 시점이다"고 동조했다.

사회자로 나선 최봉태 변호사는 한국 원폭 피해자들을 '3중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한국 원폭 피해자들은 강제 동원되었던 피해, 원폭을 맞았던 피해, 방치된 피해자다"면서 "원폭 피해자들에게 있어서 향후 과제는 미국에게 원폭 피해에 대해 법적 책임과 함께 역사적⋅정치적 책임을 같이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주제 1945년 미국의 핵무기 투하 이후의 국제법 주제 발표를 하고 있는 다니엘 리티커 스위스 로잔대학교 부교수. / 히로시마 = 나윤상 기자

◇︎핵무기 사용, 국제법 규칙에 완전히 반해

국제인도법상 핵무기 사용의 합법성에 대해 1996년에 나온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결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당시 국제사법재판소(ICJ)는 핵무기의 위협 또는 사용이 무력 충돌에 적용되는 국제법 규칙, 특히 인도법 규칙에 '일반적'으로 위배된다는 결론을 만장일치로 내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부분에서 논란을 야기한 판결을 덧붙인다.

‘재판소는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극단적 지위 상황에서 핵무기 위협 또는 사용이 합법 또는 불법인지 여부를 확정적으로 결론지을 수 없다.’

국제토론회 2주제인 ‘1945년 미국의 핵무기 투하 이후의 국제법으로 본 핵무기 사용의 불법성’을 발표한 다니엘 리티커 스위스 로잔대학 부교수는 국제인도법, 환경법, 인권법, 핵무기금지조약(TPNW)을 토대로 핵무기 사용 합법성의 허구를 진단했다.

다니엘 부교수는 "국제인도법상 전투 수단과 방법 선택, 고통금지의 규칙 등 여러 조항들을 살펴보면서 핵무기 사용의 합법성을 인정하는 조항을 찾을 수 없었다"면서 가장 강조한 것으로 '마르텐스 조항'을 들었다.

마르텐스 조항은 1899년 헤이그 평화회의 러시아 대표였던 페도르 페도로비치 마르텐스의 발언에서 유래한 것으로 '민간인 및 전투원은 확립된 관습, 인도 원칙 및 공공 양심의 명령으로부터 연원하는 국제법 원칙의 보호와 권한 하에 놓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기 기술의 발전을 국제법이 따라잡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국제관습, 인도 원칙, 공공 양심에 어긋나는 전투 수단은 비록 법조문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불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피력한 것이다.

따라서 이 조항은 국제인도법의 완정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국제법상 ‘금지되지 않은 것은 모두 허용된다’는 로터스 원칙 논리를 거부한다.

최근 마르텐스 조항이 핵무기금지조약(TPNW) 전문에 '본 조약 당사국들은...핵무기의 어떠한 사용도 인도의 원칙과 공공양심의 명령에 또한 반한다는 점을 재확인한다'고 단축된 형태로 삽입됐다.

다니엘 부교수는 이를 토대로 "그 어떤 핵무기 사용도 국제법상 불법이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일부 국가에서 저위력 또는 전술 핵무기가 국제법의 기준을 준수할 수 있다는 주장은 입증되지 않은 억지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다시 핵무기 사용의 합법성에 대한 의견을 요청받게 된다면 ‘핵무기의 어떠한 사용도 무력충돌에 적용되는 국제법 규칙에 반한다’는 확고하고 명확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찰스 막슬리 포드햄 로스쿨 법학 교수는 미국의 확장 억제로 세계 질서를 유지한다고 하는 계획은 국제법에 정면으로 위배되고 성공할 수 없는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찰스 막슬리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 히로시마 = 나윤상 기자

◇︎"미국 확장 억제는 모두 공멸하자는 이야기일 뿐"

2020년 미 공군의 '공군 작전과 법률' 교범에는 핵 억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핵 억제는 미국의 국가안보와 국가 방위의 근간이다. 미국의 핵전력은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동맹국, 파트너국에 대한 침략을 억제함으로써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다.'

애초 미국의 억제 정책은 미국에 대한 소련의 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고안되었지만 이후 서유럽과 다른 지역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안보 의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확장됐다. 이 개념이 소위 말하는 '확장 억제'다.

찰스 막슬리 포트햄 로스쿨 법학 교수는 확장 억제의 불법성을 이야기하면서 이 개념은 한반도 동북아 평화와 양립이 불가함을 설명했다.

찰스 교수는 확장 억제의 불법성에 대해서 국제인도법상 무력충돌법 조항을 제시했다. 무력충돌법은 '무력충돌 시 적대 행위에 가담하지 않거나 더는 가담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전투의 수단과 방법을 규제하는 법'이라고 정의돼 있다.

무력충돌법에 나온 것처럼 핵무기라는 전투 수단이 위와 같은 범위로 통제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찰스 교수는 "미 공군 지휘관 편람은 '군사 목표를 겨냥하도록 충분하게 통제될 수 없는 무기는 불법'이라고 명시하는데 핵무기는 저위력 폭탄이어도 그 영향력을 통제 불가능하다"고 전제한 뒤 "통제 불가능한 핵무기는 원칙적으로 불법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핵무기의 영향력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핵무기 사용은 일반적으로 재래식 무기로 인해 발생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인간 건강과 자연환경 및 물리적 환경에 부수적인 악영향을 미칠 뿐이라는 것이다.

찰스 교수는 미국의 이런 주장에 대해 △미국 고위력 핵무기 △핵 대응 및 확전 가능성 위험 통제 불가능성 △핵무기 운반의 정확성에 대한 통제 불가능성 △방사능 낙진 영향의 통제 불가능성 △전자기 펄스(EMP) 영향의 통제 불가능성 △핵겨울 영향의 통제 불가능성을 짚어가며 반박했다.

현실적으로 미국은 핵무기의 전반적 영향의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찰스 교수는 "미국이 통제하지도 못할 핵무기를 다른 나라의 방위에 사용한다는 확장 억제는 한마디로 다 같이 공멸하자는 이야기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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