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넘은 한의사, 반세기 넘게 '동의보감'과 씨름하는 이유


"양약을 능가하는 한의학의 저력을 알리는 것이 마지막 꿈"
조남학 대구 유림한의원 원장, "환자가 찾는 한 한의원 운영할 터"

대구 남구 봉덕동에 위치한 유림한의원. 조남학 원장은 1971년(경북한의사협회 확인) 첫 개원 이래 5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고령의 현직 한의사 중 한명이다./대구=김민규 기자

[더팩트ㅣ대구=김민규 기자] "비아그라가 처음 출시됐을 때 정말 충격받았죠. 한의사 생활에 절망을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조남학(82·대구 유림한의원) 원장은 대구·경북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대표적인 고령 한의사다. 그는 "동의보감을 50여 년간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생체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연구’에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며 "한의사 생활을 은퇴하기 전에 양약을 능가하는 동의보감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1999년 한의사로서 자괴감 들어

1971년 첫 개원한 그의 한의원에는 '돈깨나' 있다는 이들부터 자녀를 원하는 이들까지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대부분 '남성 기력을 회복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죽은 자가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날 만한 스태미너 약재는 없었다. 한의학 책자에 언급된 대로 약을 처방하고 몇 가지 기력 회복제만 첨부해도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러던 중 양방에서 1999년 비아그라가 출시됐다. 당시만 해도 남성들에게는 '기적의 약'이었다. 한의사로서 28년간의 딜레마가 한 번에 해결되는 것을 보고 안도감보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나름 '명의'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환자들에게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거든요."

그가 자괴감으로 한동안 의원 문을 닫자, 선배 중 한 명이 일침을 놨다. "몇 백 년 전 만들어진 한약 처방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라며 "지금이라도 더 공부하고 자신의 연구 결과로 만들지 않으면 한의사로서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며 몰아붙였다.

지역에서 나름 한의사로서 인정도 받았던 그는 "교사였던 아내의 한 달 월급을 하루 만에 벌었다"라며 어깨를 으쓱거리기도 했다. 30여 년 가까이 ‘매출이 곧 한의사로서의 명성’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조 원장. 그는 당시 지역에서 명의로 알려졌다. 대부분 남성 관련 질환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대구=김민규 기자

발효가 되고 있는 녹용과 인삼 등 한약재. 조 원장은 한약재는 발효 과정과 시간에 따라 약효는 천차만별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약값을 10여 년째 올리지 않고 있다./대구=김민규 기자

◇ 여든이 넘어서도 주경야독 한의학

그는 연구오십이 넘어서 다시 한의학 서적을 펼쳤다. 학생 때 시험을 위해 볼 때와는 달랐다. 같은 약재라도 발효법과 부위별 약재 약효는 말 그대로 천지 차이였다. 낮에는 한의원을 운영, 밤에는 한의학 연구에 매진하느라 아내로부터 오해를 사기도 했다.

"매출은 일정한데 지출이 급격히 늘어나고 아내가 두 집 살림하는 줄 알았나 봐요 하하하(웃음). 약제가 원하는 대로 안 나와서 날린 비용만 억대가 넘을 겁니다."

그는 10여 년 연구 끝에 동의보감 처방인 ‘신기환’을 이용, 남성 기력 저하와 배뇨장애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또다시 '명의'로 등극했다. 효과는 기존 약과는 달랐다. 특히 배뇨장애를 겪고 있던 이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배뇨장애가 해결되자 남성 기력은 덤으로 해결되었다.

"한 노모가 장성한 아들의 손을 잡고 와 '5대 독자의 대를 이어달라'던 사례도 있었는데 결국 대를 이었고 중학생이 된 후 찾아온 적도 있었습니다. 한의사로서 가장 큰 보람이였죠."

하지만 과거 명성을 회복하나 싶었던 것도 잠시, 건강식품 시장도 급격히 변했다. 때마침 한의 시장도 피부, 다이어트인 미용 시장으로 변하면서 한의계 판도가 바뀌기도 했다.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조 원장의 한의원. 여든이 넘었지만 현역 한의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환자가 찾는 이상 한의원 운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환자가 찾는 이상 한의원 운영할 것

50여 년이 넘은 그의 한의원을 찾는 이는 하루 평균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아내는 직원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다며 은퇴를 권하기도 했지만 "한 명이라도 찾아오는 환자가 있는 이상 문을 닫을 수는 없다"라며 "찾아오는 후배들에게 50여 년 경험과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임감 때문이라도 한의원을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양방과 한방의 논쟁을 지하수로 비유했다. "양약의 경우 사막에 파이프를 깊이 꽂아 지하수를 뽑아내는 것이지만 한약은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든 뒤 지하수가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또 "당장에는 파이프를 박아 물을 뽑아내는 것만큼 효과가 없지만 깊은 샘을 만드는 건 결국 높은 산과 푸른 숲인 원리를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조 원장은 "한의학이 갈수록 어려운 가운데 저 같은 선배들의 노하우가 후배들에게 전해지고 끊임없이 연구돼야 한의학이 계승될 수 있다"라며 "서양의학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은퇴하는 그날까지 근원적인 치료는 한의학이 앞선다는 걸 증명한 한의사로 이름을 남기는 것이 꿈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역사에서 교훈을 얻듯 조상들의 ‘체험’에서 오늘날 활용 가능한 ‘비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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