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형 늘봄학교, '학원 뺑뺑이' 대신 돌봄 공백 해법 될까


3월부터 부산지역 모든 초등학교서 전면 시행
전문 인력·시설 확보 난관…서비스 질 우려도

부산시교육청은 오는 3월부터 부산 시내 모든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를 전면 시행한다. 정부의 늘봄학교 전면 시행을 앞두고 전국 시도 교육청 중 가장 먼저 결정했다. /더팩트DB

[더팩트ㅣ부산=김신은 기자] #부산 수영구에 거주하며 남편과 함께 맞벌이를 하는 워킹맘 곽모(38) 씨는 올해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초등학교 수업이 오후 1~2시면 끝나는 탓에 아이를 맡아줄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학원 뺑뺑이 돌리기'로 보육 공백을 메우기에는 비용 부담이 만만찮다. 퇴근 시간까지 아이를 학원에 보내려면 영어, 태권도, 음악, 미술 등 4~5과목은 기본인데, 학원비에만 월 100만 원가량이 쓰인다. 그렇다고 '조부모 찬스'도 여의치 않다.

#부산 동래구에 사는 초등학생 아들을 둔 워킹맘 박모(40) 씨는 그간 방과 후 아이를 친정 엄마에게 맡기고 매월 용돈을 챙겨드렸다. 하지만 친정 엄마 건강이 나빠지면서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민간 돌봄 서비스를 알아봤지만 믿을 만한 곳을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퇴근 시간까지 학원을 보내기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퇴사까지 고민하게 됐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은 빨라진 하교 시간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보다 빠른 오후 1~2시면 정규수업이 끝난다.

현재 초등학교에서는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이 운영되고 있지만 이용이 제한돼 추첨에서 '운이 좋아야' 참여할 수 있고, 일정 금액을 내면 최대 오후 5시까지만 진행된다.

결국 퇴근 시간까지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놓거나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이마저도 어려운 학부모들은 퇴사를 선택하기도 한다.

해외 주요 국가와 비교해도 한국의 초등학교 정규수업 시간은 매우 짧은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의 '해외 주요국 초등학교 정규 수업시간 비교'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1·2학년 주당 수업시간은 23시간으로, 미국(30∼33시간), 캐나다(30시간)보다 7∼10시간 짧다.

◇학교 돌봄 확대 '늘봄학교' 전면 시행

늘봄학교는 희망하는 초등학생들이 정규수업 전후로 양질의 교육·돌봄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등장했다.

아이들이 최대 오후 8시까지 학교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어 올해부터는 직장에 다니는 학부모들이 퇴근 후에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것이 가능하다.

부산시교육청은 오는 3월부터 부산 시내 모든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를 전면 시행한다. 정부의 늘봄학교 전면 시행을 앞두고 전국 시도 교육청 중 가장 먼저 결정했다.

부산시교육청은 돌봄을 희망하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 전원을 우선 수용하고, 2025년에는 3학년까지 희망 학생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설과 인력을 갖추기로 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매일 2시간의 무료 학습형 방과 후 프로그램을, 초등학교 1∼3학년을 대상으로는 자기 주도적 학습을 제공한다.

초등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는 대학과 지역기관 인력과 시설을 활용한 방과 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긴급돌봄이 필요한 3세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 언제나 무료로 이용 가능한 '24시간 돌봄센터' 운영도 확대한다.

학부모들의 호응도 높다. 부산시교육청에 따르면 부산지역 예비 초등학생 학부모 75.7%(3742명)가 자녀의 '늘봄학교' 참여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학부모총연합회는 지난달 25일 성명을 통해 "올해는 희망하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 전원에게 오후 8시까지 돌봄을 제공한다고 하니 학부모로서 자녀 양육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늘봄학교 운영을 반겼다.

◇인력·시설 확보 난관…현장은 반발

늘봄학교의 가장 큰 난관은 인력과 공간 확보다. 당장 새 학기부터 늘봄학교가 실효성 있게 운영되려면 전문 인력이 필요하고, 제대로 된 돌봄 공간이 갖춰져야 한다.

부산시교육청은 늘봄학교 행정지원 인력을 1학기 내 2교당 1명(154명)으로 배치하고, 이미 확보된 기간제교사 120명은 한시적으로 운영한다는 입장이다.

돌봄공간 확보를 위해서는 올해 학교 내 돌봄교실을 384실(715실→1099실) 증실하고, 학교 내 돌봄 공간이 부족할 경우 직속기관, 지자체, 대학, 사립 유치원 등을 활용한 지역 연계 돌봄시설 120실(18실→138실)을 증실하기로 했다.

그러나 교사들은 돌봄 업무가 행정업무 부담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며 '전담운영체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존의 현장 돌봄전담사들도 업무 가중을 호소하고 있다.

교사노조연맹 측은 "늘봄학교 업무가 대다수 행정업무에 기반하고 있고, 교육이 아닌 보육 영역이므로 초등교사가 담당할 일이 아니다"며 "학교로 늘봄학교가 들어온다면 교사에게 업무가 부과돼 초등교육이 훼손되는 것은 불문가지"라고 주장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부산지부 측은 "늘봄학교가 확대 도입됨에 따라 돌봄전담사들의 업무 가중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그동안 한 학교에서 2~3개의 돌봄교실 행정업무를 혼자서 담당하던 전일제 돌봄전담사는 2~3개의 돌봄교실과 방과후연계형 교실 업무가 추가돼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시간마저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부산지부는 또 "부산교육청은 학교당 기간제교사 또는 학교 순회 행정 지원 인력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이 기간제교사가 돌봄교실 행정업무를 어디까지 지원해 줄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돌봄교실에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오롯이 담당하는 돌봄전담사가 배치돼야 한다"며 "돌봄교실이 원활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도 그 반의 행정업무는 돌봄전담사가 맡아서 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운영 형태"라고 강조했다.

부산참보육부모연대 측도 "학부모들이 가장 원하는 초등돌봄 정책은 정규수업이 끝난 후부터 오후 5시까지 안정적인 공간에서 초등 돌봄전담사가 배치된 오후 돌봄교실 확대"라며 "하지만 이번 부산형 늘봄 정책을 통해 늘어나는 504개 돌봄교실 중 다수는 돌봄전담사 없이 자원봉사자로 운영되는 연계형 돌봄교실이며 사실상 땜방식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아이들이 학교에서 이동해 지역시설 연계를 확대하겠다는 것 또한 돌봄의 기능보다는 특기 적성 수업에 치중한 정책"이라며 "당사자 의견 반영 없이 가장 세심하게 준비해야 할 돌봄 정책을 개학과 입학을 불과 한 달 앞두고 강행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덧붙였다.

tlsdms777@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