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부산=조탁만, 김신은 기자, 경남=강보금 기자] 특수강도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가 병원 치료 중 사라진 김길수(36)가 도주 63시간 만에 경찰에 붙잡힌 것과 관련,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이 재조명되고 있다.
신창원의 탈옥 계획은 1996년 6월로 거슬러 올라 간다. 예배당에 선 그에게 교회당 신축공사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작업장 외부에 설치된 철제 펜스를 타면 교도소 외벽을 넘을 수 있을 것 같다. 공사 차량이 빈번히 출입하는 것을 보면 적외선 경보기를 작동시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다 철제 펜스에 가려 감시탑의 감시를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이렇게 탈주 경로를 머리 속으로 그리고 또 그렸다. 이제 남은 것은 수감방의 화장실 환풍구에 설치된 쇠창살을 자르는 것과 좁은 틈으로 나갈 수 있는 날렵한 몸을 만드는 것이다.
이윽고 1997년 1월 20일 새벽 3시, 그는 쇠창살 2개를 비틀어 떼어내 환풍구를 엎드려 빠져 나온다. 구덩이를 파 교회당 신축 공사장으로 들어간 뒤 감시탑의 동정을 살피며 쇠파이프를 타고 교도소 외벽에 올랐다. 수감방에서 나온 지 약 1시간 30분 만에 그는 부산교도소를 탈옥했다.
탈주 직후 그는 곧바로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는 교도소를 빠져 나오자마자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한 가정집에 들어가 옷과 신발, 자전거 등을 훔쳤다.
그렇게 그는 약 2년 6개월 동안의 도피기간 중 전국을 무대로 총 105회에 걸친 절도 행각을 벌였다. 피해액은 무려 5억 6469만 9255원 상당에 달한다. 이 밖에도 3회에 걸친 강도 행각을 벌여 약 3억 원의 돈을 빼앗았다.
무려 907일간의 도피 행각을 벌인 신창원. 경찰들 사이에서 '신출경몰'이라는 말까지 유행했는데, 이는 '신창원이 출몰하면 경찰이 몰락한다'는 의미였다. 실제 연 97만여 명의 경찰력을 투입했으나 그를 잡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지인의 도움을 받으며 은신하기도 하고 당시 역대 최고 규모의 현상금이 걸리면서 제보로 인해 파출소 문 앞까지 붙잡혀 갔음에도 경찰을 밀치고 달아나기도 했다.
이렇게 경찰은 몇 차례 신창원을 검거할 기회가 있었으나 놓쳤다. 이 책임은 여러 경찰서장들이 고스란히 지게돼 직위해제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1999년 7월 전라남도 순천에서 가스 수리기사의 신고로 덜미를 잡혀 신창원의 탈주극은 막을 내린다.
신창원은 1982년 3월 특수절도죄로 소년부 송치 처분을 시작으로 1983년 10월 야간주거침입절도죄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1984년 4월에는 절도죄로 징역 장기 1년, 단기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9월에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절도) 등으로 징역 장기 3년, 단기 2년을 선고받고, 1989년 12월 강도치사죄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그는 1991년 3월까지 대구교도소에서 머물다 그해 9월부터 전주교도소에서, 1992년 8월부터는 대전교도소로 또 같은해 10월부터는 청송교도소와 청송 제2교도소를 거쳐 1994년 11월부터 부산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탈주를 감행했다.
그는 재검거 이후 22년 6개월 형을 추가로 선고받고 두 차례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으나 실패하고 현재 대전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한편 특수강도 혐의로 체포된 김길수는 서울 서초경찰서 유치장에서 식사 중 플라스틱 숟가락 손잡이 부분 5cm가량을 삼켜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달아났다. 그는 도주 사흘째인 지난 6일 경기도 의정부시 기능동에서 공중전화로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부근에서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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