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ㅣ 광주=박호재 기자] 전남 순천에서 시 밭을 일궈 온 장민규 시인이 첫 시집을 추수했다.
'그런 밤을 지나온 적이 있다'는 시집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장 시인의 시어들은 부유하는 삶의 내면을 의미심장하게 주시하는 경건함으로 다가선다.
이를테면 그는 떠돌면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범람한 강’의 비명을 듣고 하찮은 ‘생강’에 모래를 덮어주는, 내 밖의 것들에 대한 외경을 고민한다.
이런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상인 시인은 "장 시인은 이른 봄이면 오일시장을 돌며 묘목을 팔고, 가을이면 김장고추를 파는 장돌뱅이 시인이다"고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이 시인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많은 독자들은 그의 생업을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풍경의 절묘한 이미지화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시 작법이 현대시의 교직의 정수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황새가 먹이를 잽싸게 나꿔 채는 동안 아주 잠깐 흙탕물이 일었다
부리에 걸린 물고기가 전 생애를 걸고 몸부림칠 때
나는 어느 절 추녀 끝에 걸린 풍경을 생각했다
벗어날 수 없는 풍경이었다…
위 시구는 최현주 문학 평론가(순천대 교수)가 "이미지의 교직 능력을 통해 풍경의 시학을 이루어 낸 절정을 보여주는 시"라고 평가한 ‘풍경’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최 평론가는 "장 시인이 현대시의 인식 틀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더 좋은 시가 창작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전한다.
장터를 떠도는 시인의 삶에서 짐작될 수 있듯이 ‘자본화되지 않은’ 생활 속에서 더 웅숭깊은 시어를 건져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물론 때로 장 시인은 세태를 역류하는 무서운 고집과 저항의 시어들을 토해놓기도 한다. 또한 체제를 비판하는 그의 시적 접근법을 최 평론가는 "모멸에 가까운 자기 부정의 방식으로 그들을 껴안고 포용하는 시적 윤리를 온몸으로 밀어붙인다"고 분석한다.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게 고요라고 여기고
그게 평화라고 여기며 넙치처럼 엎드려서…
어떻게 살아도 해는 다시 뜨고
그렇게 맞이한 아침에 거울은 보긴 보는거니
경멸과 조소가 가득 담긴 ‘개’라는 제목의 시 한 구절이다.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겁한 일상에 대한 비판이 날카롭고 매섭지만 ‘거울은 보긴 보는 거니’라는 마무리로 자조한다. 숯댕이 묻은 타인의 얼굴을 보며 ‘거울은 보고 사냐?’고 타박하는 일상의 장면이 떠올라 슬그머니 웃음이 괴어오기도 한다.
이처럼 ‘투박한 고집’과 ‘절묘한 이미지의 교직’ 사이를 오가는 그의 시어는 그래서 때로 낯설고, 때로 독특하다. 그 공접 면은 무엇일까?
장민규의 시심에 청진기를 갖다 대고 "시인의 건강한 오일장의 노동과 경전처럼 시를 대하는 태도가 늘 미더움으로 다가와 앞날을 기대하게 한다"는 이상인 시인의 진단은 그래서 새록새록 독자들에게 와 닿는다.
forthetrue@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