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3공수 상황실장 "광주 민주화운동, 북한 개입설은 터무니 없는 이야기"


광주교도소, 전남대학교 암매장 장소... 현재 건물 세워져 있어
최세창 3공수여단장, 도청에 가지 않아

20일 518기념재단에서 열린 오늘의 증언이 518진상의 첫걸음이다 행사에 두 번째 증언자로 참석한 최명용 예비역 소령은 오일팔 당시 광주시민들의 고초를 잘 안다 고 말하고 일부 세력들의 북한군 개입설은 사실이 아니다 고 증언했다.사진 왼쪽은 518구속부상자회 황일봉 회장. 오른쪽은 최명용 예비역 소령/ 광주 = 나윤상

[더팩트 l 광주=나윤상 기자] 5.18 당시 3공수여단 상황실장을 했던 최명용 예비역 소령이 "광주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을 높이 평가하며 계엄군으로서 사과드린다" 고 말하고 "북한군 개입설은 터무니없는 사실이라며 일부 세력들에게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은 현실이 안타깝다" 고 말했다.

20일 오후 2시 518기념재단 대동홀에서 518구속부상자회,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와 사)대한민국 특전사 동지회가 ‘오늘의 증언이 518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두 번째 만남이 열렸다.

지난 3월에 계엄군 김귀삼씨 증언에 이어 이번에는 5.18 당시 3공수여단 상황실장을 했던 최명용 예비역 소령이 증언에 참가했다.

최 소령은 "3공수여단은 5월 16일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명령으로 광주역에 도착했다" 고 밝히고 당시 광주역에서 시민을 향한 발포 명령자를 누구인지 특정지을 수 없지만 "집단 자위권은 내려진 것으로 안다" 고 증언했다.

이 부분에서 "당시 3공수여단장이었던 최세창 준장의 명령없이 어떻게 사격이 이뤄질 수 있느냐" 는 반문에 최 소령은 "사격명령이 있었다는 생각은 든다" 면서도 "대대장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듣지 못했기에 아는 사실만 증언한 것" 이라고 말했다.

또한, 최 여단장의 도청 사격명령에 대해서도 "최 여단장은 광주역에만 가고 도청에는 가지 않은 것으로 안다" 고 답했다.

5.18당시 3공수여단은 16일 광주역에 도착하여 전남대학교에 주둔했다면서 "수백 명의 여공들이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구호와 함께 데모를 하여 자위권 차원에서 진압봉 진압"으로 사망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시체는 전남대 건물 뒷편에 묻었다" 고 증언했다.

이어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로 이동할 때 150~200여 명의 시민군을 탑차에 넣고 최류탄을 터뜨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12-17구의 사망자가 나온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다.

최 소령은 전남대와 광주교도소에 암매장 한 시신의 위치를 알고 있지만, 부대가 광주를 나온 후 보안 담당관들이 찾아와 먼저 이야기 했다며 "이후 암매장 장소들에 건물이 들어서 현재로서 찾기는 힘들 것" 이라고 말했다.

이후 3공수여단은 광주교도소에서 임무를 마치고 송정 비행장으로 꽝주를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최 소령에게 5.18단체가 다시 한번 당시 상황실장으로서 당시 도청 상황을 보고 받았을텐데 전일빌딩 헬리콥터 사격과 도청에서 시민발포 상황에 대해 물었지만 그는 "상황실장이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 무전으로 들은 바 없다" 고 증언했다.

최 소령의 이러한 증언에 당시 피해자인 시민군 신분이었던 518단체회원들은 현장상황에 대한 더 자세한 증언을 요구했다.

하지만 최 소령은 현장에 있었던 요원이 아니라 지휘부 상황실에서 근무하여 현장의 세세한 부분은 증언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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