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천안=김경동 기자] 90분간 경기가 끝나자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그대로 쓰러졌다. 마치 월드컵 결승전 같았던 혈투의 결과는 1대 1 무승부였다. 지난 19일 진행된 하나원큐 K리그2 2023 8라운드 천안시티FC와 안산그라너스FC 경기 이야기다.
천안시티FC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던 경기였다. 이날 경기 전까지 리그 7연패를 기록하며 팀의 분위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다. 이날 경기에 패하면 자칫 K리그2 최다 연패인 9연패를 눈앞에 두게 됐다.
그래서였을까 이날 경기장에서는 다소 낯선 모습이 보였다. 박남열 천안시티FC 감독의 드레스코드였다.
지금껏 대부분의 경기에서 트레이닝복을 입고 지휘해 온 모습과는 달리 박 감독은 구단의 상징인 하늘색 넥타이에 정장을 입고 나타났다. 박 감독의 정장 착용은 올 시즌 처음으로 마치 의관을 정제하고 전투에 나서는 장수의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앞서 박남열 감독은 지난 7라운드 이후 선수들에게 ‘프로다움’을 유독 강조했다. 이날 드레스코드의 변경은 박 감독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이자 마음가짐의 변화를 선수들에게 보여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박 감독의 이런 변신에 선수들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화답하며 사력을 다했다. 전방부터 시작되는 압박과 수비 협력, 몸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지를 선보였다. 아쉬운 무승부였지만 승점 3점보다 값진 1점을 가져올 수 있었다.
특히 다미르 선수가 팀의 선제골을 가져오자 벤치에 있던 선수들은 물을 뿌리며 격하게 반겼다. 마치 야구서 끝내기 안타를 친 선수를 향해 동료들이 기쁨을 표출하는 장면을 보는 듯했다. 그동안 선수들의 마음고생을 날리는 골이기도 했다. 여기에 리그 최다 연패의 우려를 지웠고 패배 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동안 구단은 '프로는 결과로 말해야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에 위축돼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조건은 '투자한 만큼 결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스포츠 산업에서 투자 없이 결과를 기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헝그리 정신은 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K리그1의 일부 팀들이 성적으로 인해 팬들의 비난을 받고 감독이 사퇴하는 것은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거나 구단의 투자가 부실한 데 따른 성적 저하가 대부분이다.
천안시의 연간 예산은 50억원 수준으로 K리그2 리그 13개 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선수들이 손발을 맞춘 것은 불과 수개월이다. 선수를 지원해야 할 사무국도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정원을 채우지 못한 채 일당백으로 지원 업무를 소화하고 있다. 돈, 시간, 인력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제 갓 걸음마를 떼는 구단에 가혹한 비난을 할 수는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구단주인 박상돈 시장의 구단을 향한 신뢰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이날 경기 직후 선수들을 만난 자리에서 "경기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투쟁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면서 "이런 파이팅 넘치는 경기를 계속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천안시티FC가 리그 8경기 만에 귀중한 승점을 확보하며 반등의 기회를 잡았다. 앞으로 남은 경기가 많은 만큼 시민 모두의 마음을 담은 응원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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