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만에 찾은 둘째형 유해" 89세 어르신의 '눈시울'


6.25 전사자 고 허창식 하사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 진행
큰형과 함께 목숨바쳐 조국 헌신…유해 없이 묘비 덩그러니

30일 서귀포시 대정읍 인성마을회관에서 열린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이근원 단장(왼쪽)이 고(故) 허창식 하사의 친동생 허창화씨에게 호국의 얼함을 전달하고 있다./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더팩트ㅣ제주=허성찬 기자] 72년만에 찾은 작은형의 유해. 아직 유해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호국영웅 귀환패를 받은 89세 어르신의 눈시울은 붉어지기만 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30일 오전 제주 대정읍 인성리마을회관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진행했다.

유해의 주인공은 6·25전쟁 당시 국군 11사단 소속으로 '설악산 부근전투(1951년 5월 7~13일)'에 참전 중 산화한 고(故) 허창식 하사이다.

1933년 4월 22일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에서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난 고인은 일제강점기 형편이 여의치 않아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어린나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한국전쟁 반발로 1950년 9월 훈련소에 입대 후 강원 인재 저항령에서 벌어진 '설악산 부근 전투' 참전 중 전사했다. 만 18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유해는 지난 2011년 발굴 당시 바위 틈새에 산발적인 형태로 분포돼 있었으며 불에 노출돼 수축 및 손상된 흔적, M1 카빈총 실탄과 철모 등의 유품이 함께 발견돼 당시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짐작케 한다.

더욱이 고인의 형인 고 허창호 하사도 같은 11사단 소속으로 전북 순창지구에서 참전 중 동생보다 먼저 전사했다. 불과 4개월여 차이다.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에서 앞서 지난달 신원확인 소식을 들은 고인의 막내동생 허창화(89)씨는 "죽기 전에 유해를 찾아서 정말 다행이다. 형님을 찾기 위해 고생하신 모든 모든 분께 정말 감사드린다"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고 허창식 하사의 친동생 허창화(좌)씨와 조카 허만영(오른쪽)씨가 호국의 얼함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유해 신원확인에는 고인의 조카이자 허창화씨의 아들 허만영씨의 노력이 있었다.

2021년 서부보건소로 아버지를 모시고 가 시료를 채취해뒀던 허만영씨의 노력은 지난달 유해감식단에서 설악산 부근 전투 지역에서 유해를 찾았다는 연락으로 이어졌다.

<더팩트>와의 전화통화에서 허만영씨는 "간혹 뉴스 보도상에 전방에서 유해가 발굴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는 기사를 봤다"며 "작은 삼촌의 유해를 찾지 못했고, 아버지 나이가 89세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유전자를 채취해두면 언제가 찾지 않을까 생각하고 오늘의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 위로 형제 두 분 다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린시절 설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약주를 드실 때면 저를 앉혀놓고 원망섞인 목소리를 해왔다"며 "어릴 때부터 현충일이 되면 아버지 손에 이끌려 유해는 없었겠지만 삼촌의 묘비명 앞에 간단한 제사음식을 놓고 제를 지냈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삼촌들 제사를 물려줬다. 아버지 건강이 편치 않으신데 살아계실 때 만이라도 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 생각했다"며 "아버지 마음속 응어리를 다 풀 수는 없겠지만 유해 발굴로 지금까지의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 대정읍충혼묘지에 있는 삼촌의 묘비에 가서 제사를 지내려 한다"고 전했다.

이날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에서는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등에 관한 설명, 신원확인 통지서 전달 후 호국영웅 귀환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했다. 고인의 유해는 6월 국립제주호국원으로 옮겨져 안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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