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경남=강보금 기자] 한 순간에 그림자마저 사라진 사람을 두고 '실종'이라 할까, '가출'이라 할까. 실종과 가출의 경계선은 모호하다.
최근 서울 지하철 9호선 가양역 인근에서 실종됐다 인천 강화군 갯벌에서 하반신만 있는 시신으로 발견된 20대 남성에 대한 소식이 언론을 통해 쏟아져 나오자 '성인 실종'이라는 말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지난 5년간 통계에 따르면 성인 실종이 늘고 있음에도 뚜렷한 대책을 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경찰 통계연보서 아동과 성인의 실종 표기 달라
지난 2016년부터 최근 발간된 2020년도까지 지난 5년간 경찰 통계연보에서 만 18세 미만의 실종자에 대해서는 '실종 아동' 또는 '아동실종'이라는 단어로 표기했다.
하지만 어느 곳을 찾아 보아도 '성인 실종'은 없다. 대신 만 18세 이상의 성인의 경우에는 '가출'이라는 단어에 성인 실종의 의미를 포함시켰다.
'실종'과 '가출'의 의미에는 큰 차이가 있다. 실종이란 한 사람이 종적을 잃어 갈 곳이나 생사를 '확인'할 수 없게 된 것으로 제 3자의 시선에서 해석되는 객관적 의미의 단어다. 반면, 가출이란 가정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고 하여, 주체가 되는 한 인물이 스스로 어떠한 행위를 행한 것으로, 개인의 문제라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결국 단어에서부터 성인의 실종은 '가출'이라는 고정관념이 고착돼 있다.이 때문에 강력범죄로부터의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따른다. 이와 같은 표기는 경찰 통계연보뿐 만의 일도 아니다. '성인 실종'을 명시한 법률 또한 따로 없다.
이에 이명수(국힘, 충남 아산갑) 의원은 지난 2월 '실종성인의 소재발견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률은 경찰이 성인 실종 신고를 접수하면 지체 없이 수색 또는 수사 여부를 결정하도록 한 법안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법률이 통과하게 되면, 개인의 사생활과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원한, 채무 관계 등의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대립해 해당 법률은 보류되고 있다.
◇성인 실종, 얼마나 늘었나
성인 실종 사건은 해마다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에 대한 가출 신고 접수는 2016년 6만7907건, 2017년 6만5830건, 2018년 7만5592건, 2019년 7만5432건, 2020년 6만7612건으로 집계됐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신고 접수는 4만9353명이다. 이는 지적장애나 치매환자를 뺀 신고 접수 건 수다.
특히 가출 신고 이후에도 발견되지 않은 미발견자 역시 2016년 385건, 2017년 487건, 2018년 524건, 2019년 673건, 2020년 1178건으로 해마다 그 규모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경남 지역의 경우 2016년에는 3445건의 신고가 접수됐으며 이 중 105건이 미발견됐다. 2017년에는 3641건 중 67건이 미발견 됐으며, 2018년에는 5066건 중 515건, 2019년에는 5272건 중 77건, 2020년에는 5400건 중 62명이 미발견된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방향 모색 기대
이처럼 국내 성인 실종 사건이 매년 증가하는 추세임에도 뚜렷한 방안이 나오지 않는 것은 실종과 관련된 현행 법률과 대통령령, 행정안전부령, 보건복지부령 등 모든 실종은 아동과 지적장애인, 치매환자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즉 만 18세 이상의 성인은 실종 신고가 들어와도 강제로 소재를 파악하거나 수사에 나설 법적 근거가 없어 적극.신속 수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단순 가출에 의한 신고도 실제로 많아, 실종인지 가출인지에 대한 경찰의 빠른 판단이 어렵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로 꼽힌다.
단어는 생명과도 같다. 새롭게 태어나기도 하고 소극적으로 사용되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또한 무서운 힘을 갖기도 하며, 내내 가슴 속 어딘가를 맴도는 신비한 마술도 부릴 줄 안다. 성인 실종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을 만큼 강력범죄와의 연결성이 짙어지고 있다. 먼저 '성인 실종'이라는 단어에 법적 효력을 뒷받침해 준 뒤 대응책을 생각해 본다면, 현재 표류된 이명수 의원의 법안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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