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작가가 쓴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보고 싶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쓴 책이다.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사랑은 숨겨지지 않는다. 누구들처럼 소설을 읽고 웃고 운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사실 ‘빨치산의 딸’은 대학 시절 읽었다. 그 때 여운이 30년이 넘어도 남았다. 정지아가 다시 책을 냈다고 해 지리산이 보이는 구례까지 한숨에 달려갔다. 정지아는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을 어머니에게 돌려주고 있었다. 끼니마다 밥을 지어내고, 지리산 능선이 보이는 곳에 엄마와 단짝 친구처럼 살고 있다. 그에 말처럼 "쉰 넘어서야 깨달았다. 신이 나를 젊은 날로 돌려 보내준다 해도 나는 거부하겠다. 오만했던 청춘의 부끄러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작가를 만나며 배척과 갈등의 말, 금기어로 여겨저온 ‘빨갱이’라는 단어는 유령 같은 것이다. 정지아 작가 아버지 故정운창씨는 조선노동당 전남도당 조직부부장, 어머니 이옥남씨는 남부군 정치지도원이었다. 정지아 작가를 만나는 날 정재욱 지리산 사람들 운영위원이 동행했다. 정재욱 운영위원이 작가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기자는 그 내용을 3회에 걸쳐 정리한다.<편집자주>
[더팩트 | 지리산=김도우 기자] 내가알던 아버지는 진짜일까. 미스터리 같은 한 남자가 헤쳐 온 역사의 격랑이 정지아의 손끝에서 펼쳐진다.
소설은 시대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소설은 빈소를 찾은 이들과 아버지의 지난 사연을 들려주는 가운데 조각보를 이어 붙이듯 아버지의 진짜 면모를 그려 보인다.
미처 부고를 돌리기도 전에 일착으로 장례식장에 나타난 이는 아버지의 국민학교 동기인 박한우 선생. 아버지와 그는 한겨레신문과 조선일보를 같이 취급하는 신문보급소에서 새벽마다 마주쳤는데, 아버지는 한겨레신문을 구독하고 박 선생은 조선일보 독자였다.
서로의 신문을 가리켜 "뽈갱이 신문", "반동 신문"이라 욕하고 사사건건 토닥거리면서도 두 사람은 평생 교류했다.
까닭을 묻는 딸에게 아버지가 들려준 대답은 이러하다.
"그래도 사람은 갸가 젤 낫아야." 이념보다는 사람을 앞세웠던 아버지의 태도를 여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순겡은 사람 아니다냐?"사상범 출신인 자신을 감시하는 정보과 형사와 농을 주고받고 술잔을 나누는 모습을 두고 비아냥거리는 딸에게 아버지가 한 말도 같은 맥락이다.
빨치산 시절 아버지는 식량 보급투쟁을 나섰던 마을에서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젊은 순경을 발견하고도 "순겡을 그만둔다고 허먼 살레줄라요"라 제안하고, 순경이 그 제안에 응하자 동료들에게 순경의 존재를 숨기고 현장을 떠났다.
그 다음날 파출소에 사표를 낸 순경이 빨치산을 돕겠다며 산으로 올라오자 아버지는 받아들이지 않고 돌려보냈는데, 출옥 뒤에 만난 그가 까닭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질 게 뻔한 전쟁이었소."
아버지는 누군가의 목숨을 살려주기도 했지만 다른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남로당 전남도당 위원장의 지시로 전쟁 중에 위장 자수를 하는 바람에 산에서 죽지 않고 내려올 수 있었고, 국민학교 은사와 그 아들의 꾸준한 보살핌으로 결혼을 하고 생활을 꾸려 갈 수 있었다.
정 작가는 "이 소설은 이데올로기에 덧씌워진 아버지의 내면으로의 여행이었다"며 "빨갱이가 아닌 자연인으
로서의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과정 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역시 소설 속 아리처럼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원망이 깊었던 시절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구례에서 서울로 이사한 것도 부모의 존재가 알려져서 였다.
아리의 이름이 부모가 활동한 백아산의 ‘아’ 지리산의 ‘리’를 조합했듯이 정 작가 이름도 이들 산에서 따왔다.
그는 "가난의 상처는 없었는데 빨갱이는 감당할 수 없는 오명 이었다"며 "어린 시절엔 당연히 원망했고, 대학에 가 역사를 이해하면서 화해했다.
엄청난 무게였고 세상을 보는 시선,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 등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다"고 떠올렸다.
소설은 실재와 허구가 뒤섞였다.
아버지의 캐릭터는 꽤 투영됐지만, 작은아버지 등 일부 등장인물과 에피소드는 상당 부분 만들어냈다.
자칫 무거워질 이야기를 정 작가는 특유의 생생한 필체와 구수한 남도 사투리로 유쾌하게 풀어냈다.
딸은 아버지의 이데올로기적 허상과 현실과 동떨어진 장광설에 유머 섞인 냉소적 어투로 제삼자적 시각을 유지한다.
"여전히 이데올로기가 불편한 사람들이 있고 사회주의란 말만 꺼내도 괴로워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현실의 시선을 끌어들이려 했죠"
정 작가는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소설집 ‘행복’ ‘봄빛’ ‘자본주의의 적’과 청소년 소설을 펴냈다.
김유정문학상, 심훈 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노근리 평화문학상 등을 받았다.
정 작가는 "이데올로기 문제는 희미해졌다. 세상의 불합리함과 불평등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며 "(다만) 아버지가 ‘우파’ 친구와도 친하게 지냈듯이, 싸우더라도 돌아서면 누구나 아름다운 한 개인이지 않나. 요즘은 너무 적대적이어서 세상이 조금 무섭긴 하다"고 했다.
이 소설은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근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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