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천안=김경동 기자] "2년을 준비한 귀농 첫 해 농사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가을의 결실만을 꿈꾸며 보낸 지난 시간이 모두 물거품이 돼 버렸습니다."
고향에 돌아와 인생 2막을 꿈꾸던 신입 농부인 박동구(69)씨의 얼굴이 수심으로 가득 찼다. 지난 봄 과수화상병을 예방한다며 천안시와 천안배원예농협에서 보급한 약이 오히려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쳐버렸기 때문이다.
전국적인 배 주산지인 천안시 성환읍 일대 배 농가들이 수확철을 앞두고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과수화상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며 지난 봄 살포한 약제로 인한 ‘약흔’이 남아 사실상 출하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품 가치가 떨어져 농민의 시름이 깊다.
21일 피해 농가들로 구성된 비상대책 위원회에 따르면 이러한 약흔 피해가 발생한 농가는 100여 농가로 피해율은 50~95%, 피해 금액만 최소 50억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 약흔이 발생한 배는 정상가인 개당 1000원에서 크게 하락한 개당 200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천안시의회 경제산업 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21일 성환읍 율금리를 찾아 피해 농가에 대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성환읍 율금리에서 4000평의 배 과수원을 운영하는 박씨도 이번 사태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는 "첫 농사였지만 지난 2년간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한 덕택에 풍년을 기대할 만큼 농사를 잘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라며 "상인들도 와서 서로 계약을 하려고 했는데 배를 싼 봉지를 열자 약흔이 보이니 모든 계약이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피해 발생 초기 약제 생산 업체에서 연락이 와 현장 점검을 하겠다고 했지만 한 달이 넘도록 묵묵부답이고 여러 차례 연락 끝에 겨우 피해를 점검했지만 이미 모든 출하 계약이 취소되는 등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고 호소했다.
약제 생산 업체와의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에 따라 농민들의 추가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보상의 결정적 증거가 될 ‘약흔’ 발생 배에 대한 창고 보관료는 물론 상품 출하용 배와 피해 발생 배를 나누는 작업에 대한 인건비가 추가로 소용되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농가는 천안지역에서 창고를 확보하지 못해 인근 논산지역 등에 위치한 창고를 임대하는 등 2차 3차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유영오 피해대책위원장은 "농가들이 바라는 것은 실제 피해 보상 뿐"이라며 "해당 업체는 공동피해 조사 등 대책위의 제안을 모두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철환 시의원은 "해당 업체와의 보상문제를 대책위원회에만 위임할 것이 아니라 시도 적극적으로 나서 피해 보상을 이끌어 내야 한다"며 "추후 피해 보상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오는 행정사무감사에 해당 업체 관계자를 증인으로 출석시켜 보상 문제를 따져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thefactcc@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