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꿈 많았던 막내 여배우…극단 대표·선배에게 성폭력 당해”


광주연극계 2차 가해까지‘충격’...법률대리 민변 “고소 접수, 실제 피해 더 많을 것”

광주연극계 성폭력사건해결대책위원회가 29일 광주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해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했다./광주=나윤상 기자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성폭력 피해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예술이 아니다", "관객은 성 범죄자의 공연을 원치않는다"

‘광주연극계성폭력사건해결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지난 27일 예고한 기자회견이 29일 오전 11시 광주검찰청 앞에서 열렸다.

세찬 빗줄기 속에서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는 대책위 활동가와 문화예술인 등 50여명이 참여, 광주연극계 성폭력 사태가 시민사회의 심각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음을 반영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배우 장도국씨는 모두 발언에서 "가해자들에게 법적·사회적 책임을 묻고 고소에 나서겠다"며 기자회견의 취지를 밝혔다.

기자회견에 동참한 광주 연극계 성폭력 사건 법률대리인인 민변의 김수지 변호사는 이 사건의 상식을 초월한 폭력성을 강조했다.

법률대리 민변 "상습적으로 이뤄진 강제추행, 유사강간, 강간치상 사건"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은 광주 연극계 몇 몇 가해자들로부터 2012년도부터 상습적으로 이루어진 강제추행, 유사강간, 강간치상 등에 관한 것이다. 가해자들은 스무살을 갓 넘기고 연극계에 막 발을 들인 피해자들에게 접근하여 ‘좋은 배역을 줄 수 있다’며 추행하거나 강간하여 피해자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고 사건의 경위를 밝혔다.

29일 기자회견에는 거센 빗줄기 속에서도 성폭력대책위 활동가들과 문화예술인 50여 명이 참여해 광주 연극계 성폭력 사태가 시민사회의 심각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음을 반영했다./광주=나윤상 기자

이어 "10년이 더 지났지만 피해자들은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피해자들은 연극계의 잘못된 관행 속에서 저항조차 해보지 못 한 채 스스로 연극계를 떠나는 것으로서 상처를 덮어야 했다. 고소 의사를 밝힌 피해자들은 두 사람이나, 실제 피해자들은 더 많다"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술’을 빙자하여 연극배우들을 만지고 강간을 시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우리 민변 대리인단은 가해자들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할 예정이다. 고소장 접수 이후에라도, 피해자들이 추가로 나타나면 추가 고소도 예정하고 있다"고 이번 사태에 임하는 민변의 각오를 밝혔다.

이날 회견에서는 특히 대책위 활동가들이 대독한 장문의 피해 당사자 입장문은 듣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당사자 김산하(가명)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배우를 꿈꾸던 저는, 대학 진학을 준비 하던 중 2012년 5월 광주 시립극단 재창단 공연 오디션에 합격하여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만 19세로 연극계의 가장 어린 막내였다. 연극계에 입문한지 다섯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저는 극단 대표인 B와 당시 공연에 함께 출연했던 선배 배우 C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2013년 친한 선배이자 극단 대표의 B아내인 A로부터 성추행 당했다"고 증언했다.

김산하(가명) "가해자 배우자가 간통죄 신고 협박에 성행위까지 강요"

이어 김씨는 "B는 극작가이자 이곳저곳에서 작품상을 받은 연출가로 광주 연극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당시 저는 이제 막 연극에 입문한 새내기로 B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대놓고 저항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은 저 이외에도 수많은 피해자가 있고, 연극계에서 이미 B의 성폭력을 ‘손버릇이 좋지 않다’는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보며 용인해주고 있었다"며 성추행을 대하는 광주 연극계의 문제의식 부재를 지적했다.

또한 김씨는 가해자들의 상식을 초월한 경악을 금치 못할 2차 가해를 폭로했다.

광주연극계 성폭력사건 법률 대리인인 민변의 김수지 변호사가 고소에 나선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광주=나윤상 기자

A씨는 "극단을 나온 후 타 작품에서 B의 배우자인 A를 만났다. A는 B의 강간을 저와 동의하에 가진 성관계라 단정 짓고 제게 지속적으로 전화를 걸어 간통죄로 신고하겠다며 온갖 욕설과 자살 협박을 했다. B에게로 저를 데려가 성행위를 강요하고 거부하자 저를 추행하기도 했다"며 끔찍했던 기억을 털어놓았다.

끝으로 A씨는 "연극을 접고 극심한 원형탈모와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무기력에 시달리며 치료를 결심했다. 치료를 받으며 PTSD를 진단 받았다. 스스로 이상행동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성폭력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임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며 "그때부터 무언가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성폭력 사건 고소를 결심하게 됐다"며 공론화에 나서게 된 입장을 밝혔다.

"우리는 모두 무력했다. 누구에게도 도움 요청할 수 없었던 연극계"

또 다른 피해 당사자 서주영(가명)씨는 광주 연극계 성추행 가해자의 공공연한 상습적인 성추행을 주장했다. 서씨는 광주 연극계에 스무 살 때 발을 들였고 스물두 살까지 배우로 활동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스물한 살에 첫 공연을 올리게 되었고, 공연 시파티의 술자리에서 다른 극단의 연출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그는 저를 자신의 옆으로 앉으라 했고, 옆에 앉은 저의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네가 마음에 들어. 나에게 잘 보이면 좋은 배역을 줄 수 있어’라는 말을 했다"고 당시 상황을 밝히며 "연출가의 말과 표정은 몇 년이 지났음에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연출가의 행동에 저는 어떠한 대응도 할 수 없었다"며 고통스럽게 기억을 회고했다.

29일 기자회견에는 전국 단위의 예술단체들이 연대발언에 나서 광주연극계 성폭력사건 후폭풍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광주=나윤상 기자

서씨는 "그 장면을 목격한 선배는 저에게 그 연출가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 우리가 조심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연한 상습적인 성추행에도 그 연출가가 광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이 화가 났지만,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무력했던 자신을 고백하면서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과 함께 이러한 문제를 알리고 연대하기로 선택했다. 더 이상의 피해는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공론화에 적극 나서게 된 입장을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 연대 발언에 나선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이하 예술인 연대)는 "두 피해자가 짧게는 6년, 길게는 10년에 이르기까지 성폭력 피해에 대한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던 게 연극계의 환경이다"고 주장하며 "또한 두 피해자 모두 성폭력 피해를 입고 광주 연극계를 떠나야 했던 현실이다. 우리는 이 용기에 힘을 얻어, 지역 연극인이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 필요한 도움을 청하고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요구할 권리, 지역을 떠나지 않고 연극을 계속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자 한다"고 연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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