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순천=유홍철 기자] ‘순천을 사랑하는 여성들 일동’이란 유령 임의단체가 26일 순천시청 앞에서 뜬끔없는 기자회견을 갖고 "무소속 노관규 순천시장 후보는 자신이 했던 성희롱 발언에 대한 책임을 지고 후보직을 사퇴하라"고 소리를 높였다.
이 단체는 노 후보가 시점 미상의 어느 때 지인과의 전화통화 과정에서 "A씨가 정치적 야망이 있는 여자예요. 저 남자가 선거에 써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랫도리를 *** 여자여"라는 발언을 문제 삼았다.
이에 앞서 모 인터넷 신문이 최근 노 후보의 발언을 기사화 했고 특정 SNS 채널에 1분 가량의 분량으로 편집돼 유통되고 있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됐던 노관규 후보가 아무리 사적인 전화상의 대화라고 하더라도 성희롱성 부적절한 내용을 표현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공직에 나설 의향을 품고 있었다면 공적인 자리는 물론 사적인 대화에서도 품격을 갖춰야 하는 것은 당연하기에 일정한 비판은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이런 비판과는 별개로 이날 기자회견은 선거철이면 불쑥 등장하는 유령단체의 네가티브 선거운동이란 점에서 눈살을 찌뿌리게 했다.
거창하게 ‘순천을 사랑하는 여성들’이라고 했지만 오하근 후보를 지지하는 동원된 일부 유치원 선생님들과 이번에 시.도의원에 공천된 몇몇 민주당 여성 후보 등 30여명 안팎의 급조된 유령단체라는 것이 참석한 기자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기자회견’이라는 명칭을 썼으면서도 자신들이 준비한 1페이지 짜리 회견문을 낭독한 뒤에 ‘기자들이 질문을 하겠다’고 소리쳐도 못들은 체 도망치듯 슬슬 자리를 떠버렸다. 이같은 황당한 기자회견 장면이 정체불명의 떳다방 단체라는 것을 대변하고 있다.
더구나 회견문을 낭독한 사람은 이번 지방선거에 민주당 도의원 후보로 나서 당내 경선도 치르지 않고 단독 공천돼 무투표 당선된 한춘옥 도의원이다.
한 의원은 누가봐도 부동산 투기로 보이는 사안으로 민주당 공천기준에 비춰보면 공천배제 대상이었음에도 보이지않는 손이 작동, 공천을 받은 사람이다. 이 때문에 이날 기자회견을 지켜본 기자들로부터 "자기성찰을 먼저 해야 할 당사자가 이런 자리에 앞장설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여기에 특정 인터넷 신문이 공개한 대화 내용도 공개했을 경우 공적 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극히 사적인 내용이어서 선거를 앞둔 전형적인 네거티브 선거운동 소재란 비판의 소리도 나온다.
또 하나는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소병철 국회의원과 오하근 후보의 배후 꼼수정치라는 점이다.
이날 기자회견을 공지한 것은 공조직인 소병철 의원과 소병철 의원실, 소 의원의 전 보좌관 등이다. 이들 명의로 보내온 각각의 보도자료에는 기자회견 일정과 내용이 포함됐다.
이 때문에 소병철 국회의원은 급조된 여성 단체 존재와 사적인 대화 내용을 소재로 한 기자회견을 방조한 흔적이 역력하다.
녹취록 관련해서 할 말이 있으면 오하근 후보 자신이 나서든지 아니면 선대위가 나서면 될 일이다. 오 후보가 듣기 민망한 사적 대화에 끼어들어 네거티브를 한다는 비판을 피하고 싶었는지 모를 일이다.
소 의원이 선대위를 총괄 지휘하는 마당에 자신이 직접 나설 수 있었을 터인데도 몇몇 여성 의원과 공천자들을 앞세운 것은 배후에서 조정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돌이켜보면 순천시장, 도의원과 시의원 후보 공천 과정에서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19명의 공천관리위원들이 알아서 결정한 일'이라고 뒤로 숨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같이 소 의원의 배후 꼼수정치 방식에다 소통 부재가 순천시장 경선에 참여했던 예비후보들의 분노를 샀고 원팀 구성이 무산된 원인이기도 했다.
소병철 의원은 2년 전 전략공천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할 때와 당선 이후 줄곧 순천정치 개혁을 외쳐왔다. 또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서고도 클린공천, 개혁공천을 공언해 왔다.
본 기자도 개인적 이해관계를 떠나 소 의원의 정치개혁 소신과 철학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아낌없이 응원을 해 왔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 공천 과정과 공천 결과를 지켜보면서 정치개혁이 아니라 2년 뒤 총선에서 자신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자들로 광역, 기초 의원들이 공천되는 것을 목격했다. 순천 정치발전은 연목구어에 불과하고 오히려 퇴행적 구태에 빠져들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이같은 정치 퇴행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기자들 사이에 난무했어도 여지껏 해명이나 소통의 자리는 전혀 없이 불통과 일방통행만이 지배하는 느낌이다. 현역 시·도의원들도 '이러도 돼나'하면서도 숨을 죽이며 걱정의 눈빛만 교환할 뿐이다.
그의 정치철학이 그대로 살아있다면 이날의 기자회견을 취소시켰어야 마땅하다.
아무리 자당의 순천시장 후보가 선거판세에서 뒤쳐져 있다고 하더라도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소신과 정치철학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감동을 줄 수 있고 훗날도 기약할 수 있는 법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했던 한 기자의 말을 첨언하고자 한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아내 김건희씨의 녹취록 건과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녹취록 건이 지난 대선에서 이슈가 됐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양 당의 최종 대선 후보가 됐고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됐다"
녹취록이 시중 장삼이사의 일시적 안주감이 될 수 있을지언정 기울어진 판세를 뒤집기 힘들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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