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지난 해 6월 코로나19가 글로벌 팬데믹으로 심각해진 시기, 대다수 국가들의 국경이 닫히자 정부는 민간항공사의 특별기를 운영, 해외 교민들의 귀국을 대대적으로 지원했다. 당시 아시아나 항공은 인도, 이라크, 베트남, 호주, 필리핀 등에 거주하던 교민 6000여명을 국내로 수송했다.
지난 해 8월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외교부의 활동을 돕던 아프가니스탄인 그리고 가족들이 아프간 정부 전복으로 위험에 빠지자 정부는 공군 수송기를 보내 400여명의 아프가니스탄 현지인들을 데려왔다. 당시 영화처럼 극적으로 전개된 수송 작전은 매스컴의 핫이슈로 떠오르며 국민들의 눈길을 모았다.
두 가지 사례에서 드러난 ‘책임을 지는 정부’의 모습은 국민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란에 따른 난민 문제를 대하는 정부의 모습은 두 얼굴이 느껴질 정도다. 특히 국내에 연고자가 있는 고려인 동포들이 인근 국가로 탈출해 난민으로 떠돌며 고국 행을 간절히 바라고 있음에도 정부는 지원의 손길을 외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탈출 이들 고려인동포 난민들의 국내 연고자들은 대부분 광주 고려인마을(광산구 월곡동)에 거주하고 있다. 고려인마을은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으로 구 소련 연방국가들과 중앙아시아 일대에 흩어져 살고 있던 고려인들 중 고국 귀환에 나선 고려인들이 공동체를 구성해 살고 있는 마을이다. 지금은 주민 수가 6000여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이들 중 우크라이나에 가족이 있는 사람은 250여명에 이른다. 러시아 침공 소식이 알려진 날부터 이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탈출했지만 한국행 항공비를 마련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는 친지들의 소식이 간간히 알려지면서 가슴이 타들어가는 중이다.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를 중심으로 항공권 지원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주민들 모두가 형편이 넉넉한 처지도 아니다. 대다수 주민이 인근 공단에서 저임금 노동을 하거나 일용근로자로 살아가고 있고, 또는 마을에서 작은 가게들을 운영하고 있다. 1만원, 5만원, 10만원 등 소액의 성금들이 답지했다.
서로의 살을 깎는 모금운동과 지역사회의 후원으로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기는 하다. 고려인마을은 이 기금으로 지난 14일 헝가리로 탈출한 뒤 항공편을 구하지 못한 10세 고려인 소녀를 지난 22일 무사히 한국에 입국시켜 할머니 품에 안겨줬다.
모금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고려인마을은 최근에는 주민들이 모은 기금과 지역 사회의 도움을 받아 30여명의 항공비를 단체로 지원했다. 이들 중 16명이 지난 30일 단체로 입국했고 1일에도 10여명이 입국할 예정이다.
하지만 여전히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이들이 현지에서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 고려인마을은 도움이 필요한 우크라이나 탈출 고려인이 현재 100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이들의 입국 항공편도 지원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에 입국한 이들이 체류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의 도움을 받아 원룸 보증금 200만원과 2개월치 임대료도 지원할 계획이다.
고려인 마을 주민들로선 벅찬 과제일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탈출 고려인동포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광주 평동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 커뮤니티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 김복주 목사는 "정부의 방관을 이해할 수 없다. 코로나 긴급 귀국수송이나 정부를 도왔던 아프간 현지인 수송 작전 같은 것이 이번에는 이뤄지지 않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며 " 더구나 이들은 고국 귀환을 간절히 원하는 고려인 동포들이지 않는 가"라고 반문했다.
이어서 김 목사는 "어려울 것도 없다. 군 수송기 한 대만 띄우면 될 일이다"고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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