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가 진행하는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가 심의위원장(위원장) 제도로 불합리하게 결정되고 있다는 주장이 인천지역 예술계에 확산되고 있다. 개정된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 및 관리 조례'(조례)에 따라 심의를 진행하는 9명의 심의 위원(위원) 중 위원장과 부위원장 3명이 고정되면서 과반수(5명) 찬성으로 결정되는 선정 여부를 판가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예술계는 심의에 여러 차례 탈락한 작품이 '각고'(?)의 노력 끝에 당선된다고 주장하며 '비전문가'와 '위원 고정'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더팩트> 인천취재본부는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의 원인을 파헤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혜택받은 미술 심의'라는 심층기획 타이틀로 상(㊤), 하(㊦)로 나눠 진행한다.<편집자 주>
전문가 "공정 심의는 심의 제도 변경이 관건"
[더팩트ㅣ인천=지우현기자]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가 전문가 배제와 고정 심의 위원으로 공정성을 잃고 있다."
지난해 11월 30일 <더팩트> 보도로 알려진 인천시 건축물 미술작품 불공정 심의 의혹과 관련, 지역 예술계는 위원장에 고위 공무원을, 심의 참여 위원은 전공 분야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학연·지연으로 결집된 대학 교수 등 일반인 전문가로 선정하는 위원장과 전문성을 확인할 수 없는 위원 선정은 결국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가 공정성을 잃고 '로비 심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3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시와 지역 예술계의 논란의 시작은 지난해 7월 서울과 경기도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를 벤치마킹해 새롭게 적용된 조례로부터 비롯됐다.
논란의 핵심은 조례 제13조서부터 시작됐다. 내용을 살펴보면 작품을 심의하는 심의위원회는 위원장 1명과 부위원장 2명이 고정된 10명 이내 위원으로 구성해 열리도록 규정돼 있다. 또 공정한 심의를 위해 해당 분야 전문가가 3분의 2이상 포함돼야 한다고 언급돼 있다.
지역 예술계는 바로 이 점이 '불공정' 심의로 전락할 수 있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심의위원회는 위원장 1명과 부위원장 2명 등 3명이 고정된 인원에 10명 이내인 9명이 참여하는데 과반수 찬성으로 심의가 가결·부결되는 규정상 2명의 위원을 설득하면 원하는 작품의 가결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조례에는 심의 작품에 대해 해당 분야 전문가인 위원이 대거 참여하도록 명시돼 있지만 정작 시 규정상 위원에 대한 정보는 공정성을 이유로 전혀 알려지지 않아 작품 심의에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도 했다.
이를 통해 고의적으로 부결율을 높여 위원장과 부위원장의 권한을 높이고, 학연·지연으로 비롯된 작가들의 줄세우기도 만연해져 자칫 '로비' 심의로 진행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인천지역 심의 통과율은 조례가 개정되기 전 월 평균 80% 이상을 보인 반면 조례가 개정된 뒤부턴 고작 20%를 살짝 웃돌았으며, 정작 통과된 작품의 전문성도 수준 이하라고 지역 예술계는 입을 모은다.
인천 미술계 관계자는 "개정된 조례로 시작된 일반인 위원장 고정 제도는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제도"라며 "시는 일관성 유지와 작품의 고퀄리티를 위해 추진한다고 하지만 그동안 선정된 작품을 보면 믿을 수 없는 얘기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근 인천 송도 주요 건물 두 곳에 설치된 예술 작품을 보고 솔직히 심의 평가가 제대로 된 작품인지 의구심을 가졌다"며 "개정된 조례로 위원장이 고정제가 된 이상 관련 분야 고위 공무원을 위원장으로 지정하고 위원들의 정보도 전공 분야 등 일부는 공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인천시가 뛰어난 조례(?)를 벤치마킹했다는 서울·경기도의 실상은 어떨까.
그동안 서울·경기권 지역도 새롭게 개정된 조례 때문에 해당 지자체와 지역 예술계간의 갈등으로 번졌다. 지역 예술계는 20명의 고정된 위원이 특권적, 독점적 권한으로 부결율을 높이고 있는데 이 같은 이유를 건축주가 기금을 내게끔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천과 비슷한 문제가 이전부터 지적돼 온 셈이다.
실제로 서울의 경우는 지난 2017년 65%였던 심의 통과율이 조례 개정 후인 2018년 39%, 2019년 40% 수준을 보였다. 경기도 역시 2019년 10월까지 60% 가까운 통과율을 보였던 심의가 조례 개정 후엔 10%대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지자체와 지역 예술계의 관계가 악화되자 해당 지자체들은 현재 지역 예술계와 상생할 개선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 예술계 관계자는 "아무리 깨끗한 물도 오랜 시간 고여있으면 썩기 마련"이라며 "개정된 조례는 물을 고이게 하는 역할을 주도했다. 공정과 거리가 먼 심의가 오랜 시간 지속되면서 많은 예술인들을 힘들게 했다"고 강조했다.
인천지역 예술 학계 전문가들도 개정된 조례에 대해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위원장과 부위원장의 고정제와 블라인드 처리 된 위원 정보, 투명하지 못한 심의 결과 모두 심의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불만을 키우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는 것이다.
인천지역의 한 대학 교수는 "작가들은 공정하게 작품을 평가받고 싶어한다. 투명하지 못한 심의에 대한 작가들의 불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특히 부결에 대해 이유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면 공정한 심의가 진행됐다고 해도 믿는 작가들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근본적으로 위원의 구성 자체를 심의 참여 작가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공정성을 가지고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며 "공공미술 성격상 가결과 부결된 이유에 대해서도 참여 작가들에게 뚜렷하게 공개가 돼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infac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