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억원 사업에 사전담합 멍석 깔아준 꼴...시 예산낭비, 비리 연루 우려까지
[더팩트ㅣ순천=유홍철 기자] 순천시가 정유재란 역사공원 사업에 수백억원을 투입할 예정인 가운데 23억여원을 들여 만드는 순천 정유재란 ‘역사체험 학습장’ 전시연출 사업을 지명경쟁 입찰로 진행, 관련 의혹을 낳는 등 여러 가지 억측을 낳고 있다.
이같은 전시연출물 제작‧설치 사업의 경우 견실한 업체를 선정하고 최상의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입찰제도인 ‘제안서 제출에 의한 협상 계약’이라는 좀 더 객관적이고 투명한 제도가 있음에도 굳이 몇 개 업체를 사전에 지정하는 지명경쟁 입찰을 시행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안팎의 지적이다.
다시말해 시가 지명경쟁 입찰을 선택함에 따라 업체들끼리 사전 담합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는 모양새이고, 이에 따른 시의 예산 낭비, 업체간 또는 관과 업체간 비리 연루 등으로 이러질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28일 순천시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순천시는 23억6729만여원을 들여 해룡면 신성리 옛 충무초등학교에 정유재란 ‘역사체험 학습장’ 전시연출물 제작‧설치를 위한 입찰등록을 이날 정오까지 받고 있다.
순천시 문화예술과는 이 업무를 시행하면서 ‘제안서 제출과 협상에 의한 계약’ 대신에 ‘지명경쟁’ 입찰을 진행하고 있다.
순천시는 지명경쟁을 위해 ‘한국전시문화산업협동조합’에 업체 선정을 의뢰했고 협동조합측은 5개 업체를 선정, 통보한 상태다. 이들 5개 업체는 28일 오후 사실상 가격경쟁만을 통해 낙찰 업체를 선정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H업체는 한국전시문화협동조합 이사장 박 모씨 소유 업체이고, S업체는 순천에 연고를 갖고 있어 이들 두 회사 중에서 선정될 것이란 얘기가 퍼져있다. 소위 담합에 의한 입찰이 될 것이란 우려섞인 전망이 낙찰자 선정 이전에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가 지난 21일 낙찰자를 결정한 3억5000만원 규모의 사업인 ‘G밸리 산업박물관 상설전시 영상실 전시물 보완 설계제작’ 입찰도 이같은 지명경쟁으로 시행됨에 따라 4개 참여업체가 예비가격 대비 투찰률 98%인 D회사가 낙찰된 사례도 있다.
2순위 업체는 99%, 3,4순위 업체의 경우 예비가격을 넘어서는 134%, 135%를 써 내 아예 사업 참여의사가 없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통상 완전 경쟁입찰이 될 경우 예비가격의 88% 선에서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통례인 점에 비춰 사전 담합이 없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업계의 얘기다. 이같은 지명경쟁에 의해 담합이 이뤄질 경우 투입되는 예산도 낭비되는 요인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국전시문화협동조합 한 관계자는 '순천시의 정유재란 역사체험장 사업에 참여할 5개 업체를 어떤 방식으로 선정했느냐'는 물음에 "‘선착순’으로 선정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선착순이 성립되려면 조합 소속 업체들에게 사전 통보해서 했느냐"는 물음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는 취지로 설명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 돌아왔다. 5개 업체 선정에 대한 투명성과 공정성에 문제가 있으며 또 업체간 담합 의혹이 현실화 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배경이다.
순천에서 건축사로 일하는 한 관계자는 "순천시가 향후 수 백억을 투입할 예정인 정유재란 역사공원 사업에 최고의 작품을 만들려는 생각을 했다면 업체 선정부터 잡음없이 최고의 업체를 선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제안서 제출과 협상의 의한 계약으로 최고의 아이디어 작품을 선정하는 방식이 더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K모씨는 "지명경쟁도 입찰 방식 중에 한 가지이긴 하지만 이 경우 특허나 신기술 등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구현하기 어려운 사업에서나 채택하는 방식이다"고 전제하고 "역사체험장은 특허나 신기술 등이 필요치 않고 대신 독특한 아이디어와 경험 등에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인데 당초에 지명경쟁 방식을 택한 순천시와 조합 측의 업체선정 모두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순천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고민을 많이했고 그러다 보니 시일이 많이 걸렸으며 다른 지자체 몇 곳에 문의한 결과 지명경쟁에 의한 사업에 만족도가 높았고 업체선정이 협상에 의한 계약보다 비교적 단순해 시간상 제약도 덜 수 있어서 이 방식을 선택했으니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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