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없는 죽음에 그의 죄는 영원히 국민들의 가슴 속에 새겨져"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사망했다. 전씨가 숨을 거둔 23일은 공교롭게도 33년 전 그가 백담사로 유배됐던 1988년 11월 23일과 날짜가 겹친다.
전 씨 자신은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영욕이 뒤섞인 시간이었다고 회고하며 애써 자신의 삶을 위로했을지 모르지만, 광주시민의 가슴 속에서 그의 존재는 잔학했던 학살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음을 그의 죽음을 대하는 시민들의 냉소 속에서 거듭 확인된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 등 5월 주요 3단체와 5·18기념재단은 긴급 성명을 내고 전 씨에게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한 점을 통탄했다.
단체들은 "반성과 사죄는커녕 회고록으로 5월 영령들을 모독하고 폄훼하면서 역겨운 삶을 살았던 학살자 전두환은 지연된 재판으로 결국 생전에 역사적 심판받지 못하고 죄인으로 죽었다"며 "'역사적 심판'이 되기를 기대해 왔지만 그의 죽음으로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단체들은 "오월학살 주범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고, 만고의 대역죄인 전두환의 범죄행위를 명명백백히 밝혀 역사정의를 바로 세워나갈 것"이라고 진상규명의 의지를 거듭 다졌다.
42년여 동안 학살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온 시민사회의 시선도 차갑다.
최영태 전 전남대 5·18연구소장은 SNS 게시글에서 "그의 사과 여부는 사소한 것이다. 사법부 이전에 국민이 먼저 유죄판결을 내렸다"며 "혹여 정치권의 사면 복권이 이뤄졌다 할지라도 그의 죄는 국민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국립묘지 안장논쟁은 없어야 한다. 그는 사면여부에 상관없이 살인자이고 역사의 죄인이기 때문"이라고 국립묘지 안장 여부를 둘러싼 논쟁에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날 전 씨의 죽음 이 알려진 직후부터 SNS는 전 씨의 사과 없는 죽음을 비난하는 시민들의 글로 가득 채워졌다.
이주연(고 안병하 기념사업회 사무총장)씨는 "정의로운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죽음에 애도가 아닌, 공분을 표한다"고 말했다.
유택렬(비아농협 이사)씨는 "사과없는 죽음에 화가 난다. 누가 조문을 가는지 지켜 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열 후보 지지그룹 주요 인사들도 전씨의 사과 없는 죽음을 강도 높게 추궁했다.
장성민 이사장(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은 이날 오전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발포명령자가 누구인지, 그 역사적 진상을 밝히지 못한 채 그가 사망한 것은 우리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어두운 상처를 남겼다"며 "죽어서도 죄 값을 받아야 한다. 그를 떠나보내는 국민의 차가운 마음이 곧 역사의 심판"이라고 비난했다.
사과 없는 죽음에 진영을 막론하고 역사에 저지른 그의 죄는 영원히 국민들의 가슴 속에 새겨진 셈이다.
forthetrue@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