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극단적 선택…"조직문화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더팩트 | 대전=최영규 기자] 대전소방본부가 갑질 근절을 위한 조직문화 개선책을 발표한지 5개월 만에 한 소방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 갑질과 집단 따돌림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소방의 폐쇄적인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일 유가족과 소방을 사랑하는 공무원노조(소사공노), 민노총 대전·충남·세종지부(민노총)에 따르면 대전소방본부 소속 A씨가 '누가 뭐라해도 정의 하나만 보고 살았다. 가족, 어머니 미안해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들은 A씨가 직장협의회장 자격으로 직원들의 식사 문제를 개선하려다 부서장의 갑질과 직장 동료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해 고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와 현직 소방관들은 상명하복식 계급 문화가 만들어낸 비극이라고 입을 모은다.
소방관들은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문제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현 소방 조직의 여건상 흔한 일이 아니다"며 "상급자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소방관은 "상관이 어떤 사안만 제시하고 하급자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데 본인이 이미 답을 정해 놓고 설명한 다음 어떠냐고 물으니 거기에다 누가 다른 의견을 낼 수 있겠느냐"며 "같은 제복 공무원이지만 소방의 조직 문화는 경찰보다 유연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또 동료들의 집단 따돌림은 부서장에 대한 충성 경쟁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소방관은 "실질적으로 부서장의 근무평가 점수로 승진 등이 결정되기 떄문에 부서장의 말에 따를 수 밖에 없고 동료간 충성 경쟁이 벌어지는게 사실"이라고 실토했다.
실제로 유가족과 노조 관계자들은 동료들의 질타에 대한 상황을 기자에게 설명하면서 '충성'과 '인민재판'이라는 단어를 인용했다.
"회의시간 하급자인 후배자들은 실장에게 충성하듯 A씨에게 조직 분란을 일으키는 이유에 대해 따져 물었고 인민 재판식의 회의가 1시간 가량 이어졌다"고 고인의 말을 전했다.
이어 "직장 단톡방에서 조롱의 글이 올라왔고 일부 직원들의 주도로 A씨가 직장협의회장에서 탄핵까지 당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폐쇄적인 문화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직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노동조합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직원의 권리와 복지를 대변하기 위한 소방노조는 일반직 공무원 노조에 비해 15년이나 늦은 올해 7월에서야 합법화됐다.
그 동안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직장협의회로는 직원의 권익을 대변하기에 역부족였다,
지난해 말 대전소방본부에 3건의 갑질 관련 민원이 제기됐지만 감사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문제를 제기해도 개선되지 않기 때문에 누구 하나 제대로 나서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이런 문제는 소방 조직 전체에 퍼져 있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타 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소방관은 "상관의 폭언 등 갑질은 비단 대전소방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소방의 수직적 문화가 군대보다 심하다는 말이 젊은 소방관들 입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폐쇄적인 소방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소방 전체에 대한 의식 개선 뿐만 아니라 근무평가 등 인사 분야의 개선, 개방형 직위 확대 등 제도적인 조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에 대해 대전소방본부 관계자는 "이번 건은 경찰에 수사 의뢰해 명명백백하게 밝힐 것"이라며 "지난 4월 발표한 조직문화 개선책 등을 면밀히 분석해 미비한 점을 보충해 조직문화 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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