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좋은 기운 보내 아파' 망상증 주장…2심 재판부 "치밀한 계획 범행 및 은폐 위한 행동"
[더팩트ㅣ부산=조탁만 기자] 지난해 7월2일 오후 부산시 동구에 있는 한 아파트.
여느 때와 다름없이 TV를 시청하고 있었던 B(77‧여)씨, 그리고 그를 조용히 지켜보던 A씨. 베란다 문을 열고 주거지에 미리 침입한 A씨는 TV에 집중하고 있는 B씨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와 중에 인기척을 느낀 B씨와 눈이 마주쳤고, A씨는 곧바로 B씨의 몸 여러 군데를 흉기로 수십 차례나 찔렀다.
당시 B씨는 짧은 외마디 비명조차 내지 못한 채 끝내 숨졌다.
이후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지인의 신고를 받고 B씨의 집을 찾은 경찰은 시신을 발견한 뒤 A씨를 추적, 검거했다.
A씨는 왜 B씨를 숨지게 했을까. 채무나 원한 등의 동기도 아니었다.
조현병 환자인 A씨는 2월~ 5월 유독 몸이 아프고 기운이 없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그 아픈 이유를 당시 옆집에 살고 있던 B씨 탓으로 화살을 돌렸다.
B씨가 자신에게 부적을 붙이거나 안 좋은 기운을 보낸다는 망상에 빠진 것이다. 허무하지만 B씨가 영문도 모른 채 무차별 공격을 받고 살해당한 이유의 전부다.
검찰 조사 당시 A씨는 "피해자가 당시 비명만 질렀어도 칼로 찌르지는 않았을 텐데 ‘어’ 하는 소리만 내고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또 "피해자가 베란다 문만 잘 잠가 놓았어도 피해자를 찔러 죽이는 사태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인데 그 점이 매우 안타깝다"며 "흉기를 버린 장소는 말하지 않겠다. 흉기를 찾게 되면 재판 때 불리하게 작용할까봐 그렇다"는 취지의 진술도 했다.
A씨는 주거침입과 살인 혐의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조현병 치료를 사유로 들며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A씨가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범행을 계획하고 도주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정신 능력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 A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A씨는 심신 미약과 함께 양형 부당을 주장하며 항소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A씨의 생각과 달랐다.
부산고법 제2형사부 오현규 재판장은 "피고인이 앓고 있는 편집 조현병으로 인한 망상증이 이 사건 각 범행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치밀한 계획 아래 범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범행을 은폐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했다. 피고인에게는 재범을 억지할 가족적,사회적 유대관계도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또 "이런 여러 정상 및 피고인의 나이, 가족관계, 성행, 환경, 범행의 동기와 경위, 범행의 수단과 방법, 범행 후의 정황 등 이 사건 기록과 변론에 나타난 모든 양형조건을 종합하여 보면, 원심이 선고한 형은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아야 할 정도로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8일 A씨는 결국, 1심 판결보다 3년 많은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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