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관광객 유치·지역 문화예술 활성화 등 ‘긍정적 연쇄효과’ 기대
[더팩트ㅣ부산=김신은 기자] 커다랗게 벌리고 있는 입, 훤히 드러난 치아, 환하게 웃고 있지만 왠지 모를 공허와 망연자실이 묻어나는 파안대소.
중국 현대미술의 ‘사대천왕’으로 꼽히는 유에민쥔(岳敏君)의 대표작 <처형>(1995·사진)이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무기력증에 빠진 중국인의 자화상을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는 얼굴 군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2007년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이 작품은 당시 중국 현대미술 최고가인 590만 달러(한화 54억원)에 낙찰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니컬 리얼리즘(냉소적 사실주의)으로 표현될 수 있는 유에민쥔의 작품은 중국의 정치와 사회적 현실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인류가 지난 세기에 실험한 모든 이데올로기와 사회구성체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작업의 핵심이다. 그는 교사로 재직 중 일어난 천안문 사태 후 비극적인 결말을 마주한 중국 사회에 회의를 느끼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트레이드마크인 ‘웃음’ 시리즈는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그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사회와 시대에 대한 절망을 시니컬한 웃음으로 표현함으로써 자기 자신, 나아가 그가 속한 사회까지 조롱하는 것이다. 보통의 다른 작가들이 도피하는 방식으로 사회 문제에 맞선다면 유에민쥔은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과장된 유머로 승화시킨다. 최근에는 보편적 인간애와 문명 비판을 표현하는 작품세계를 꾸준히 펼치고 있다.
현재 서울 예술의전당에는 그의 국내 최초 대규모 개인전인 ‘한 시대를 웃다!’ 전시가 열리고 있다. 그가 화가로 등단한 1990년대 초기 작품부터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근작까지 다양한 주제를 통해 표현된 유에민쥔의 ‘예술적 고민’을 느껴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숙명여대 도예과 최지만 교수와 협업한 백자와 판화 공방인 P.K STUDIO(백승관, 하정석)와 전통 판화기법인 실크스크린 방식으로 제작한 판화 작품들은 유에민쥔의 작품세계가 앞으로 얼마나 확장될 수 있을지 기대를 갖게 한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케이팝 스타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아르엠(RM·본명 김남준·26)이 전시장을 찾아 백자 작품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유에민쥔과 25년 지기 친구이자 이번 전시의 큐레이팅을 맡은 윤재갑 상하이 하우아트 뮤지엄(HOW Art Museum) 관장은 그가 초기 작품에서 권력에 대한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모습을 작품 속 인물들의 웃음으로 보여줬다고 말한다. 윤 관장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길어 올린 그의 웃음은 가슴 시리게 역설적이며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유에민쥔은 노장사상이나 화엄론에 깊이 기대고 있다고 고백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응시, 문명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이야기하는 최근 작품들에서 그런 생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며 "예를 들어 해골이 소재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와 무분별한 소비주의로 인한 전지구적 환경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공생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보인다. 그는 늘 동시대의 화두를 생각하며 작품세계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6월 부산 해운대 ‘엘시티 뮤지엄 개관전’ 계획 중
유에민쥔은 서울 일정이 끝난 후 6월 중 부산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당초 유에민쥔의 국내 첫 개인전은 부산 해운대 ‘엘시티 뮤지엄’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엘시티 준공이 늦어지면서 부득이하게 서울에서 먼저 진행됐다.
부산 전시 추진은 엘시티 중국계 주주사인 강화㈜가 한중 문화교류를 위해 적극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강화㈜는 엘시티의 2대 주주이자 상하이 상공인들이 부산에 설립한 중국계 투자기업이다. 한중 교류와 우호증진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1993년 부산시-상해시 자매결연의 가교 역할에 이어 해운대관광리조트(엘시티) 사업에 2대 주주로 참여했다. 강화㈜의 곽은아 총괄대표는 6월 엘시티 뮤지엄의 개관전으로 유에민쥔 전시회를 열기 위해 대관과 운영계획 등을 기획사 측과 협의 중이다.
곽은아 총괄대표는 "통상 세계적인 작가들이나 공연의 경우 투어일정이 길면 2~3년치까지 촘촘하게 잡혀있기 때문에 사전에 일정을 협의하고 확정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며 정해진 일정은 변경되지 않고 지켜져야 한다"면서 "유에민쥔의 경우에도 작가의 의사 타진과 전시공간의 조건 협의, 작품 선정, 전시일정 조정 등 제반 사항들을 사전에 충분히 협의해야 하지만 엘시티의 준공일정이 매우 유동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협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어서 전시회 유치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곽 대표는 "한·중 경제교류와 우호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건물에서 전시를 연다는 취지에 작가 측에서도 공감하고 있으며 올해 유에민쥔 부산 전시가 성사된다면 한중 문화교류의 해(2021~2022)를 여는 주요 이벤트로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이 예상되는 등 한중 관계 개선 흐름이 빨라지는 가운데 중국을 대표하는 예술가가 부산에서 전시회를 갖는 것은 관광도시 부산에 도움이 되는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중국 현지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두터운 팬덤을 몰고 다니는 유에민쥔의 전시가 부산에서 열리면 문화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중국 관광객 유치와 중국 예술가들의 부산 전시·공연 활성화 등 긍정적 연쇄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지역 문화계는 내다보고 있다. 중국 현대미술은 2010년대부터 전세계 미술관과 갤러리를 휩쓸면서 세계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는 등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번 전시 유치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유에민쥔-지역 예술가, 협업 위한 ‘소통의 장(場)’ 마련
부산 전시는 서울 전시와 차별화를 뒀다. 바다를 향해 열린 환경을 적극 활용하고 전시관 규모를 더욱 키워서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자, 작가와 지역 예술가들의 소통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윤재갑 관장과 곽은아 대표는 유에민쥔 전시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작가 전시를 부산 도시재생을 위한 문화예술사업으로 추진하는 방안도 구상 중에 있다.
윤 관장은 "부산은 느낌이나 체취가 서울과는 완전히 다른 도시다. 서울 전시를 본 관람객이 부산 전시를 다시 본다면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며 "결국 작품은 작가의 품을 떠나 관람객의 오감과 교감하며 완성되는 것이며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관객을 만나는 것은 작가나 작품 모두에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관장은 "부산 전시는 찡그릴 수밖에 없는 시대상을 웃음으로 유쾌하게 승화시키는 유에민쥔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펼쳐내고자 한다"며 "또 작가가 오랫동안 머물면서 지역 예술가들과 소통하며 콜라보레이션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시간을 갖게 하고 싶다"고 뜻을 내비췄다.
이어 "유에민쥔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좋아한다. 문화예술적 풍토와 성취,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한국 사회 시스템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며 "한국과 중국 간의 문화적 교류가 더 활발해지면서 서로를 거울삼아 평화와 번영이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전세계의 영화인들이 부산을 찾듯 더 많은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부산을 무대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문화계뿐만 아니라 학계, 경제계, 지자체 등에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번 유에민쥔 전시가 그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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