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발생 32년 만에 무죄 선고
[더팩트ㅣ윤용민 기자] 이춘재 8차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2·당시 22세)씨에 대한 재심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역시 항소를 하지 않기로 하면서 윤씨는 사건 발생 32년 만에 무죄를 확정받았다.
수원지법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는 17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복역하다 출소한 윤씨가 청구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윤씨가 수사 과정에서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한 점, 유죄의 결정적 증거였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서가 조작된 점을 근거로 이같이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수사기록과 국과수 감정서 등 채택된 증거들에 대한 오류가 있음이 명백하다"며 "범행을 자백한 이춘재의 진술은 신빙성이 높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오랜 기간 옥고를 치러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받은 피고인에게 사법부 구성원 일원으로서 사과를 드린다"며 "이 선고가 조금이나마 피고인의 명예회복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이례적으로 소회를 밝혔다.
재판과정에서 어느 정도 무죄를 예견했는지 윤씨는 막상 무죄가 선고되자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재판 직후 박준영 변호사가 "박수를 쳐달라"고 하자 그제서야 윤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방청석에서는 연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사건 재수사를 맡은 수원지검은 이날 재판 직전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현재까지 드러난 증거관계와 수사상황 등을 고려하면 무죄가 확실해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9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도 "수사의 최종 책임자로서 20년이라는 오랜 시간 수감 생활을 하게 한 점에 대해 피고인과 그 가족에게 머리 숙여 사죄한다"며 항소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로써 살인자라는 굴레를 완전히 벗은 윤씨는 추후 국가를 상대로 형사보상과 국가배상청구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이 사건은 발생 당시부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사건은 1988년 9월 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일 오전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한 가정집에서 중학생 A(만 13세)양이 숨진 채 발견됐는데,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기존 연쇄살인 사건의 모방범죄로 봤다. '화성연쇄살인 7차사건'이 발생한 지 11일 만이었다.
모방범죄로 판단한 이유는 야외에서 발생한 다른 사건 달리 A양은 집 안에서 숨져 있었던 탓이다.
경찰은 이듬해 범행 현장 인근에 사는 농기계 수리공 윤씨를 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해 수사를 벌였다. 이후 윤씨는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20년을 복역하다 지난 2009년 가석방됐다.
윤씨는 검찰 수사와 1심까지는 혐의를 인정했지만 2심부터 "경찰이 때리고 가혹행위를 시켜서 거짓으로 허위자백을 했다"며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 하지만 주장을 증명할 구체적 물증이나 사건 당시 알리바이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고등법원 항소와 대법원 상고마저 기각되면서 끝내 유죄가 확정됐다.
윤씨는 이후에도 경찰의 강압수사 등을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2003년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사건 발생 30년 만인 지난해 9월 DNA 분석으로 이 사건 용의자가 이춘재로 특정됐다.
윤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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