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지역기반 브랜드가 지속가능 성장 동력으로 작동하는 시대,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7인의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발자취와 꿈을 찾아가는 탐사취재 기획특집을 시리즈로 싣는다. 특히 이번 특집은 PC화면이나 오프라인에 노출된 이미지를 스마트폰 스캔을 통해 AR실감 콘텐츠로 체험할 수 있는 첨단 디지털 미디어 기술이 융합돼 독자들의 눈길을 끌것으로 기대된다. 뉴스를 보다 생생하게 읽어낼 수 있는 The fact Ar 앱은 더팩트와 (주)스페이스포가 공동개발한 앱으로써 기사에 노출된 사진을 사용자가 앱을 실행한 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인식시키면 관련 동영상 등 실감콘텐츠를 흥미롭게 체험할 수 있다. 앱은 구글플레이스토어에서 'thefactar'을 검색해 설치하면 된다. 총 7회에 걸쳐 연재되는 이번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다. <편집자 주>
제주 어멍들의 채취물로 차려낸 식탁과 해녀살이의 애환이 담긴 공연이 더불어진 극장식 레스토랑, 전국적 명소로 떠올라
[더팩트ㅣ광주=박호재 ‧ 허지현 기자] 중소기업벤처부가 선정한 로컬크리에이터 ‘해녀의 부엌’은 본원적인 삶으로의 귀환을 꿈꾼 한 아티스트가 일궈낸 소중하면서도 흔치않은 결실이다. 그 귀환의 꿈속에는 ‘해녀 살이’ 라는 운명체의 아픔을 보듬고자 했던 따뜻함이 담겨있었기에 더욱 각별하게 다가선다.
공연이 함께하는 특별한 식당 ‘해녀의 부엌’(제주도 구좌읍 종달리)을 운영하는 김하원 대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해녀가 많기로 유명한 종달리에서 대대로 이어온 해녀집안에서 자랐다.
연극치료를 전공한 김 대표가 유학을 계획하다 종달리에 둥지를 튼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대학을 마치고 김 대표가 맞이한 고향 종달리는 여전히 고단한 해녀의 삶이 멍에인 양 이어지는 바닷가 마을일 뿐이었다.
김 대표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만든 것은 제주적 여성의 삶의 영혼에 다를 바 없는 해녀들의 존재 가치가 가볍게 여겨지고, 지역사회 발전에서 소외된 현실이었다. 종달리 출신으로서 해녀들의 삶을 그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보고 자라온 김 대표로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고향마을의 아픔이었다.
해녀의 부엌 아궁이는 그렇듯 김 대표의 고뇌에서 불씨가 지펴졌고, 연기라는 자신의 전공과 만나며 타올랐다.
물론 종달리 바닷가 고령의 해녀들이 김 대표의 꿈을 단숨에 이해할리는 만무했다. 그 분들이 노동의 가치를 인정 받고, 또 현실적인 삶 속에서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김 대표의 제안이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까지는 적지 않은 각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단순한 설득보다는 보여주기가 필요했다. 김 대표는 우선 종달리에서 오랜 해녀생활을 해온 제주 어멍들의 삶의 애환을 담은 연극 공연을 준비했다. 한예종 동료들과 다양한 재능을 지닌 지인들이 김 대표의 뜻에 동참했다. 해녀들 삶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진솔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데 한달 여 동안의 시간이 소요됐다.
마침내 무대에 오른 공연이 끝나고 돌아가던 차속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할머니 해녀가 눈물을 흘리며 했던 얘기를 김 대표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해녀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내가 호사를 누린다. 고맙다.
해녀의 부엌은 그렇게 종달리 해녀들과 극적으로 만났고, 지금도 여전히 그녀들의 얘기를 공연으로 꾸리고, 그녀들이 물질을 해서 채취한 해산물을 차려내며 전국적인 명성을 일궜다.
해녀의 부엌은 바다살이의 오래된 흔적이 물씬 풍기는 맑은 어판장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해묵은 어구처럼 녹이 슨 철판에 해녀의 부엌이라는 소박한 이름이 에칭으로 새겨져있고, 건물의 외양도 전혀 꾸밈이 없는 창고 같은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묵중한 철제 문을 열고 들어가면 풍경은 판이하게 바뀐다. 도회지에 있는 어느 레스토랑이나 까페에 뒤지지 않는 세련되고 깔끔한 실내가 펼쳐지고, 공연을 위한 조명기구와 무대, 음향장비들이 어우러지며 색다른 분위기를 안겨준다. 또한 어쩌면 물질을 해오며 살아온 삶을 오래 전에 마감했을 지도 모르는 해녀들이 실제 사용했던 구덕들이 인테리어 소품으로 벽체를 장식하고 있어 신구가 충돌하고 있는 듯 한 독특한 느낌에 빠져들게 한다.
그 구덕들을 자세히 살려보면 자신의 소유임을 알리는 해녀들의 소박한 이름들이 희미하게 드러나 보인다. 그렇듯, 해녀의 부엌은 고령의 해녀들의 정체성과 새파란 젊은이들의 감성이 어깨동무를 한 ‘2080’의 결합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해녀의 부엌을 상상했던 김 대표의 첫 발상이 고스란히 공간의 분위기로 옮겨온 셈이다.
해녀의 부엌은 식당이자 공연장이며, 공연장이며 또한 식당이다. 극장식 레스토랑이라는 업계 유행어가 있지만, 함부로 그렇게 부를 수가 없는 것은 공연의 래퍼토리가 그저 즐거움을 주는 콘텐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공연은 해녀들의 애환 어린 삶과 유머가 진솔하게 펼쳐지며, 그녀들의 삶을 궁금해하는 식객들과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또 제주 특산물들과 해산물들에 대한 소개가 흥미롭게 이어진다.
종합 퍼포먼스라 일컬어질 수 있는 공연은 하루 두 차례 진행되며 이러한 운영상의 특별함 때문에 예약을 해야만 해녀의 부엌에 초대될 수 있다. 초대된 이들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입장을 해야 하고, 미리 지정된 자신의 자리에 착석해야 한다. 김 대표를 비롯해 직원들 모두가 전통 해녀복장을 하고 테이블 셋팅을 하고 서빙을 한다.
메뉴는 해녀들이 평소 채취하는 해산물 중심으로 차려진다. 러닝타임 2시간에 달하는 공연에 소요되는 비용 때문에 식사는 고가이긴 하지만 하루 평균 80여명의 고객들이 꾸준히 자리를 채우고 있다.
해녀의 부엌은 전국화된 브랜드로 떠오르면서 웬만한 중소기업을 넘어설만큼 매출이 만만찮은 경영구조이지만 김 대표는 초심을 지키려고 노력중이다. 종달리 해녀가 채취한 해산물을 80% 이상 식재료로 사용하고 있고, 불가피하게 다른 제주지역의 식재료를 구입할 때도 공판장 입찰가의 30% 이상 웃돈을 주는 구매방식을 지키고 있다.
김 대표는 성공한 CEO가 됐지만 종달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부모님들의 마음은 여전히 염려스럽기만 하다. 마을에서 행여 궂은 얘기들이 나돌까 싶어서다. 그래서 김대표에게 늘 이렇게 당부한다.
"마을 해녀 어른들의 삶을 변화시킨 것만 해도 큰 일 한 것이다. 욕심이 생길 때 마다 초심을 생각해라"
부모님의 노심초사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는 욕심 아닌 욕심을 한 가지 궁리중이다. 해녀의 부엌이라는 콘텐츠를 가지고 뉴욕에 입성하겠다는 꿈이다. 연기를 더 공부하겠다는 대학 졸업 당시의 꿈이 이제 종달리 해녀들의 바다가 담긴 해녀의 부엌을 통째로 들고 뉴욕에 가겠다는 꿈으로 부풀어진 셈이다. 김 대표의 계획 속에서 해녀의 부엌 뉴욕 론칭은 1년 후가 될 전망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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