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이춘재가 진실을 말해줘서…"
[더팩트ㅣ윤용민 기자] "제가 저지른 살인 사건으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용생활을 하며 고통을 겪은 분에게 먼저 사죄를 드립니다."(화성연쇄살인 사건 진범 이춘재)
"늦었지만 이춘재가 진실을 말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죠."(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청구인)
살인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20년간 억울한 옥고를 치른 윤성여(52·당시 22세)씨가 자신의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춘재를 바라보는 심정은 복잡다단했다.
윤씨는 2일 오후 수원지법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마음은 홀가분하고 재판도 잘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면서 "그나마 이춘재가 진실을 말해줘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늦었지만 그 사람(이춘재)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이춘재도 20년 넘게 사회와 단절돼 수감생활 했는데 힘들거다. 안해 본 사람은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아직 100% 만족하지는 않는다"며 "결심과 선고공판이 남아 있기 때문에 결국 선고까지 가봐야 유·무죄가 판가름 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앞서 이춘재는 이날 법정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용생활을 고통을 겪은 분에게 먼저 사죄를 드린다"며 "저로 인해서 모든 일이 시작됐기 때문에 책임은 제게 있다"며 윤씨에게 공개적으로 사죄한 바 있다.
이 사건은 발생 당시부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사건은 1988년 9월 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일 오전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한 가정집에서 중학생 A(만 13세)양이 숨진 채 발견됐는데,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기존 연쇄살인 사건의 모방범죄로 봤다. '화성연쇄살인 7차사건'이 발생한 지 11일 만이었다.
모방범죄로 판단한 이유는 야외에서 발생한 다른 사건 달리 A양은 집 안에서 숨져 있었던 탓이다.
경찰은 이듬해 범행 현장 인근에 사는 농기계 수리공 윤씨를 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해 수사를 벌였다. 이후 윤씨는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20년을 복역하다 지난 2009년 가석방됐다.
윤씨는 검찰 수사와 1심까지는 혐의를 인정했지만 2심부터 "경찰이 때리고 가혹행위를 시켜서 거짓으로 허위자백을 했다"며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 하지만 주장을 증명할 구체적 물증이나 사건 당시 알리바이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고등법원 항소와 대법원 상고마저 기각되면서 끝내 유죄가 확정됐다.
윤씨는 이후에도 경찰의 강압수사 등을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고, 2003년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사건 발생 30년 만인 지난해 9월 DNA 분석으로 이 사건 용의자가 이춘재로 특정됐다.
윤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검찰과 변호인 양측은 모두 이춘재를 증인으로 신청했으며, 법원은 사건 발생 34년 만에 그를 증인으로 채택해 이날 법정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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