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화의 세상만사] 800만 열망 ‘동남권 메가시티’, 공수표 안되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부산=고기화 기자] 최근 부산 울산 경남지역에서는 ‘동남권 메가시티’가 단연 화두다.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 광역지자체들은 그동안 상생발전을 위한 행보를 다각도로 모색해 왔지만, 수도권에 대응한 메가시티 전략을 극명하게 표방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압권은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2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동남권 메가시티와 지역주도형 뉴딜’이란 주제로 한 발표였다. 이날 회의에는 전국 17개 시도지사(대리참석 포함)가 참석한 자리였다.

동남권 메가시티의 핵심은 인구 800만 명인 부울경을 하나로 묶어 ‘수도권 블랙홀’에 맞서는 거대도시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고 동남권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발전축으로 구축하자는 제안이다.

김 지사는 이날 "중앙정부 주도의 균형발전이 아닌 지역 스스로 주체가 되는 권역별 균형발전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지역 강점을 살린 ‘동남권 메가시티’로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하는 길을 찾아 ‘한국판 뉴딜’ 성공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국가균형발전은 지난 7월 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지역 뉴딜’을 강조하고, 여당이 ‘지역균형 다극체제 발전전략’으로 호응하면서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청와대와 정부가 언제가 될지 모르는 ‘초광역 지방정부’가 완성될 때까지 흔들림 없는 확고한 추진 의지를 보일지도 아직 미지수다. 그럼에도 희망을 갖는 건 이 같은 ‘지역 분권’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1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서울공화국’일 뿐이다. 우리나라 전체 국토 면적의 11.8%밖에 안되는 수도권에 인구의 절반이 살고, 국내 1000대 기업 중 4분의 3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실정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책을 통해 지방의 위기를 이미 십수년 전에 지적했으나 아직까지 달라진 건 별로 없다. 한국과 같은 수도권 집중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모든 인프라와 인적 자본을 수도권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상황에서 지방은 수도권의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이다.

지방과 지방도시들이 경쟁력과 자생력을 갖추려면 수도권 집중을 타파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중앙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를 위한 지방자치와 지역 분권 실현을 위한 노력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짐으로써 지방자치 시대가 열렸다. 바통을 이어받은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지방화와 균형발전시대’를 선포하고 세종특별시와 150여개 공공기관 본사를 비수도권에 할당 이전하는 노무현표 국가균형발전을 꾀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8년 2월 ‘국가균형발전 비전과 전략 선포식’에서 "노무현 정부보다 더 발전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더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을 강화화는 정책들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공염불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다행히도 올해 들어 대통령의 의지가 ‘지역 뉴딜’로 되살아나는 모습이다. 다만 아직도 청와대 핵심 참모와 더불어민주당 수뇌가 국가균형발전과 지방 분권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하는 점은 우려가 된다.

내년에 있을 부산시장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민심전환용이라거나 잠룡 중 한 명인 ‘김경수 띄우기’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일부의 시각도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모든 행위가 광의적으로는 정치적 행위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무조건 나쁘다고만 여길 일은 아닌 듯싶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지난 7월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부울경 예산정책협의회에 참석해 균형발전 뉴딜과 동남권 메가시티 등을 강조하고 있다. /경남도 제공

문제는 실천 가능성이 있느냐의 여부다. 단순히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탈피하기 위한 거짓된 계략이거나, 불순한 의도를 갖는 경우가 아니라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게 현재 지방이 처한 현실이다.

특히 ‘동남권 메가시티’는 단순 아이디어 차원이 아닌 그동안 부울경이 준비해 온 전략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부울경 3개 시도 광역단체장은 2018년 상생협약 체결과 상생발전 결의문 채택 등 동남권 협력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해 3월 ‘동남권 상생발전협의회’가 만들어졌고, 부산연구원 울산발전연구원 경남연구원이 올해 3월부터 동남권 발전계획 수립을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 1차 중간보고회가 지난달 부산시청에서 열렸고, 여기서 동남권 메가시티를 실행할 행정기구로 ‘특별연합’이 제안됐다. 특별연합의 성격은 지자체 간의 느슨한 협의체가 아닌 실행력을 갖춘 강력한 행정시스템을 갖춘 특별지방자치단체를 뜻한다. 내년 3월 최종 최종보고회를 개최한 후 빠르면 내년 하반기 ‘특별연합’을 태동시킨다는 계획이다.

물론 이는 아직 ‘풋과일’일 뿐이다. 특별연합의 조직이나 구성, 운영 등 어느 것 하나 구체화된 것은 없다. 3개 시도 주민들의 동의를 구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지방소멸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지방정부의 초광역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은 분명하다.

김경수 지사는 중단기적으로는 현행 광역시도의 지자체 형태를 유지하면서 교통 등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연합하는 ‘느슨한 형태의 행정통합’을 얘기했지만, 동남권 메가시티의 최종 지향점이 단순한 행정통합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부산에서는 이미 10년 전에 수도권 일극주의, 지방분권 미비, 중앙정부의 각종 규제 등을 벗어나긴 위한 방안의 하나로 ‘부산 도시국가론’이 주창된 바 있다.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보다 훨씬 전의 일이며, ‘탈중앙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훨씬 더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다.

1881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학파 3대 거장 중 한 명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지방자치 확대의 이점을 논증하면서 급진적 탈중앙화를 옹호했다. 그는 하나의 국가가 여러 개의 국가로 쪼개질수록 생활수준의 양적, 질적 진보가 이룩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부산 도시국가론이 연방제 수준에 준하는 도시국가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초광역 지방정부가 됐든, 특별연합이 됐든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이 현실화하려면 지금이 적기이다. 우선은 국회에 제출돼 있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안’의 연내 통과가 급선무다. 현행법상 대통령령으로도 특별지자체는 설립할 수 있지만 이럴 경우 정치적 갈등과 셈법이 복잡해질 수 있다.

지자체 간 초광역화는 비단 부울경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대구경북권, 호남권, 충청권 등 6~7개의 메가시티를 만들 수 있다. 메가시티의 핵심은 재정과 권한의 지방 이양이다. 더 나아가 6, 7명의 ‘소통령’이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 만큼 대통령의 결단이 중요하다.

메가시티에 가장 먼저 근접해 있는 부울경에서는 국가균형발전과 지역뉴딜을 천명한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성과 실천 의지를 가늠하는 첫 번째 잣대로 조만간 있을 ‘김해신공항 검증’ 발표를 주목하고 있다. 이 검증에서 ‘가덕신공항’ 건설이 무산된다면 동남권 메가시티도 ‘공수표’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할 터이다. 부울경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묶는 광역연합에 있어 관문공항 건설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16일 부마민주항쟁 제41주년 기념식 참석차 부산을 방문해 "부울경 800만 시도민의 간절한 열망이 외면받지 않도록 (관문공항 건설에) 마지막까지 최선의 역할을 다해 잘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고 말해 일말의 기대감을 갖지만 과연 문 대통령이 마지막 방점을 어떻게 찍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부울경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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