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당 수십만원 미끼 '수거책·전달책' 모집…경찰 "단순 가담자도 구속영장 청구"
[더팩트ㅣ부산=조탁만 기자] 보이스피싱 범죄(전화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금 등도 매년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총책을 잡아야만 뿌리를 뽑을 수 있다. 해외에 있는 총책을 검거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의 검거만 늘어날 뿐이다. 조직원들은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자가 건넨 피해금을 총책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이 어떻게 범죄에 가담하는지부터 해외에서 범죄를 진두지휘하는 총책과 소통하는 방식까지 알아봤다.
<더팩트>는 최근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과 직접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7월 부산의 한 지하철역 앞에서 김모(23)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이란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다음은 통화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김씨는 용돈이 항상 부족했다. 유명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자신의 이력서를 올렸다. 어느날 "카지노 고객의 선금을 받아서 입금을 하면 건당 30만원의 일당을 준다"는 문자를 받았다. 혹했다. 이후 문자에서 카카오톡 그리고 텔레그램으로 바꿔가며 소통을 이어갔다.
부산의 한 지하철역에서 누군가를 만난 뒤 돈을 받아 계좌로 이체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김씨는 현장에서 미리 알려준 인상착의의 사람을 만났고, 이 당시 함께 온 경찰에 현행범으로 붙잡혔다.
기소유예를 받은 김씨는 "현장 검거 당시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것이라고 직감했다. 정말 보이스피싱인지도 몰랐다. 대학 생활을 하다보면 항상 용돈이 부족했다. 고수익 알바라며 연락이 왔을 때 순간 혹해서 이번처럼 보이스피싱 범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을 디딜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전달책, 수거책과 같은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줄줄이 검거되고 있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보이스피싱 범죄와 관련 피해금을 수거·인출에 가담하는 조직원 검거 현황을 보면 2018년 342명, 2019년 512명에 이어 올해(8월 기준)는 356명으로 집계됐다. 통계상 올해 검거 추이를 고려할 때 지난해 검거 실적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꾸준히 성행하는데 주축을 담당하는 조직원들은 대부분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지난 6월 50대 남성 A씨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들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아 조직에 입금한 혐의로 구속됐다. 조사 결과 A씨는 인터넷 구직사이트에서 건당 10만~50만원의 수당을 준다는 고액 아르바이트에 지원한 뒤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실직한 A씨는 이들이 보이스피싱범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계속 범행에 가담해왔다.
최근 실업자는 물론 변호사까지 이 같은 범죄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지는 사례도 있다. 변호사 B(37)씨는 서울 소재 유명 대학 법학을 나와 변호사가 됐지만, 건강상 이유로 휴업하던 중 고액 알바의 유혹에 빠져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해 재판에 넘겨져 지난 7월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사기죄 외에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죄(형법 제114조)를 추가 적용받는다. 또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중간에서 전달한 단순가담자에 대해서도 경찰은 적극적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있다. 그만큼 보이스피싱 범죄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사례에서 보듯 건당 수십만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어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은 유혹에 걸려들기 쉽다"며 "보이스피싱 범죄 수거책이나 전달책은 검거 즉시 구속 수사로 진행하는 만큼 고액 알바에 현혹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고 말했다.
이에 부산경찰청은 부산시민이 가장 불안해 하는 범죄인 보이스피싱을 근절하기 위한 종합 대책을 세웠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시민 1500여명을 대상으로 범죄‧법질서‧교통‧재해재난 등 치안과 관련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남성 25.3%, 여성 21.7%가 일상생활에서 ‘보이스피싱’ 범죄를 가장 불안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1~8월 부산지역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건수는 1273건, 313억7000만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건수는 78건 감소한 반면 피해액은 되레 123억9000만원이나 늘었다. 점점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피해는 40·50대 연령층이 761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20·30대 297건, 60대 이상 215건 순이었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범죄는 강력범죄에 준한 엄정대응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