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역사소설 '백서'로 황사영 재조명...125년만의 교황 편지


역적인가, 순교자인가, 200년 논쟁에 새로운 해석 제시
1801년 신유박해와 황사영백서에 숨겨진 '진실과 의미'

방송 PD와 영화감독, 그리고 역사소설가로 활동해온 이상훈 작가가 신작 역사소설 백서(재마실 펴냄)를 출간했다. 황사영백서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 장편소설로, 125년 만에 로마 교황청에 전달된 편지의 진정한 의미를 오늘의 시선으로 되살려낸 역작이다. /책마실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방송 PD와 영화감독, 그리고 역사소설가로 활동해온 이상훈 작가가 신작 역사소설 '백서'(책마실 펴냄)를 출간했다.

이번 작품은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순교한 황사영이 교황에게 보낸 '황사영백서'를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 장편소설로, 125년 만에 로마 교황청에 전달된 편지의 진정한 의미를 오늘의 시선으로 되살려낸 역작이다.

황사영백서는 한국 천주교 역사뿐 아니라 한국사에서도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특히 편지 말미에 담긴 외세의 힘을 빌려서라도 신앙의 자유를 회복해야 한다는 내용 때문에 황사영은 오랜 세월 '역적'과 '순교자'라는 상반된 평가 속에 놓였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순교자임에도 아직 성인 반열에 오르지 못한 인물로 남아 있다.

이상훈 작가는 바로 이 역사적 질문에서 소설의 출발점을 찾았다. 과연 황사영은 나라를 배신한 인물이었는가, 아니면 극한의 박해 속에서 신앙과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호소를 남긴 순교자였는가. 작품은 이러한 물음을 치밀한 역사 고증과 상상력을 결합해 풀어낸다.

황사영이 남긴 백서는 1801년 조선 정부에 압수된 뒤 오랫동안 의금부에 보관됐다. 이후 갑오경장 때 폐기 직전 프랑스 출신 뮈텔 주교가 입수했고, 1925년 한국 순교복자 79위 시복식에 맞춰 로마 교황에게 전달됐다. 현재 원본은 교황청에 보관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조선 정부는 백서 내용을 의도적으로 축약하고 일부 내용을 편집한 '가백서(假帛書)'를 청나라에 제출하며 천주교 박해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작가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주목한다. 황사영백서를 오랫동안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소설은 당시 권력이 만들어낸 '가백서'의 프레임을 걷어내고, 원본 백서가 품고 있던 진정한 의미를 복원하는 데 집중한다. 황사영 개인의 비극은 물론, 광암 이벽을 시작으로 정약용 집안, 정명련, 정하상으로 이어지는 한국 천주교의 형성과 부활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역사와 인간의 운명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작품 속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역사학자 '진복'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황사영과 정약용, 정하상 등 한국 천주교 초기 인물들의 삶을 추적하면서 신앙과 역사, 양심과 선택이라는 보편적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를 통해 200여 년 전의 사건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유효한 인간과 시대의 문제로 확장된다.

이상훈 작가는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KBS 공채 PD를 거쳐 SBS 개국 멤버와 채널A 제작본부장을 역임했다. 방송계에서 수많은 히트 프로그램을 제작한 그는 이후 작가로 변신해 에세이와 역사소설 분야에서도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책마실

이상훈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백서를 쓰는 황사영의 심정을 가슴으로 느끼며 읽고 또 읽었다. 내가 황사영이 되고 황사영이 내가 된 것 같았다. 당시 조선의 정치 상황과 천주교 박해의 참상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과연 누가 황사영에게 쉽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또한 작품은 신유박해 이후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켜낸 아내 정명련의 삶, 사촌 형 황사영의 뜻을 이어 조선 교회의 재건을 위해 헌신한 정하상의 여정까지 함께 담아내며, 한 사람의 죽음이 어떻게 한국 천주교 부활의 씨앗이 되었는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이상훈 작가는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KBS 공채 PD를 거쳐 SBS 개국 멤버와 채널A 제작본부장을 역임했다. 방송계에서 수많은 히트 프로그램을 제작한 그는 이후 작가로 변신해 에세이와 역사소설 분야에서도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첫 장편소설 '한복 입은 남자'는 뮤지컬로 제작돼 큰 성공을 거뒀고, 글로벌 OTT 드라마 제작도 추진되고 있다. '제명공주'는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으며, '김의 나라'는 제16회 류주현문학상을 수상하며 역사소설 작가로서의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백서'는 방송인 특유의 생생한 서사 구성과 철저한 사료 분석, 그리고 문학적 상상력이 결합된 그의 네 번째 역사소설이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황사영백서를 둘러싼 200여 년의 논쟁을 넘어, 역사란 누구의 시선으로 기록되고 해석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백서'는 단순히 한 장의 편지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왜곡된 역사 속에 묻혀 있던 한 인간의 진심과 시대의 아픔을 오늘의 독자 앞에 다시 불러내며, 역사소설이 지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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