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상빈 기자] "황희찬을 무시하라. 그는 자기를 재키 찬으로 생각한다."
지난 16일 프리시즌 친선경기에서 황희찬(28·울버햄튼)에게 인종차별성 행동을 했다는 코모 1907 수비수의 발언이다.
각 유럽 리그에 소수만 존재하는 동북아시아 선수를 세계적인 홍콩 배우 재키 찬(청룽)과 엮어 조롱하는 뉘앙스다. 유럽 내 동양인은 다 중국인일 것으로 생각하는 유럽인들의 그릇된 인식이 담긴 표현이기도 하다. 인종차별로 느낄 여지가 충분하다.
당시 황희찬이 상대 선수로부터 인종차별 발언을 듣자 울버햄튼 동료 다니엘 포덴세(29·포르투갈)가 주먹을 휘둘렀고 곧바로 레드카드를 받아 경기장을 떠났다. 시즌 개막 전 교류와 연습 목적으로 치르는 친선전은 두 팀에 앙금을 남긴 채 끝났다.
울버햄튼은 경기 뒤 황희찬의 인종차별 피해를 두고 유럽축구연맹(UEFA)에 공식 항의서를 제출하겠다고 알렸다. 그러자 코모 1907은 웹페이지에 공문을 올려 문제의 발언을 한 선수와 대화한 끝에 그가 황희찬을 겨냥해 위와 같은 발언을 동료에게 했다고 밝혔다.
코모 1907은 "우린 인종차별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 어떤 형식의 인종차별도 강력하게 비난한다"면서 "이것('재키 찬 발언')은 울버햄튼 선수들이 황희찬에게 '차니(Channy)'라고 계속 부른 것과 관련 있다. 적어도 우리 클럽 선수들은 그 어떤 모욕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다"고 해명하며 재키 찬이 그의 별명 때문에 나온 표현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폈다.
'재키 찬 발언'은 인종차별적 언행이 아니라는 코모 1907은 울버햄튼을 향해 "울브스 선수들이 사태를 지나치게 부풀려서 반응했다"며 적반하장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동북아시아 선수를 향한 축구계 인종차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불과 최근까지 손흥민(32·토트넘)도 피해자였다. 심지어 토트넘 동료 로드리고 벤탕쿠르(27·우루과이)로부터 동양인 비하 발언을 들었다.
지난달 우루과이 한 TV 방송에 출연한 벤탕쿠르는 MC가 "손흥민의 유니폼을 구해달라"고 하자 우스갯소리로 "손흥민 사촌 유니폼을 가져다줘도 모를 것"이라며 "그들은 똑같이 생겼다"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동북아시아인 외모에 대한 우루과이인들의 인종차별성 인식이 엿보인다.
한국 팬들의 원성을 사고 선수와 토트넘 구단을 향한 항의가 빗발치자 벤탕쿠르는 소셜미디어에 사과문을 올렸다. 손흥민도 벤탕쿠르와는 여전히 좋은 관계로 지낸다고 밝히며 사과를 받아주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토트넘은 징계 대신 교육을 통해 재발 방지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
손흥민, 황희찬에 앞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누빈 박지성(43)도 현역 시절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곤란한 상황과 마주했다.
2000년대 중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이 박지성 응원가로 "네가 어디에 있든, 너희 나라에서 너는 개고기를 먹는다"라는 가사가 들어간 일명 '개고기송'을 만들어 부른 일화는 유명하다.
라이벌 팀 팬들이 부른 게 아니고 응원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인종차별 행위로 볼 수는 없지만, 당시 '한국인은 개고기를 먹는다'는 편견이 만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씁쓸함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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