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강일홍 기자] "사람입니까! 사람이에요?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예?"
MBN '뉴스파이터'를 보면서 한결같이 화가 나 있는 듯 악을 쓰는 저 앵커는 도대체 누굴까? 진행자 김명준 앵커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은 독특한 방송 진행방식 때문이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대체로 '속이 뻥 뚫린다' '시원하고 통쾌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독특한 말투와 스타일로 70~80년대 방송가를 풍미한 '기자출신 1호 앵커' 봉두완을 연상시킨다는 시청자들도 있다.
경각심을 가져야할 잘못된 관행이나 사회적 이슈를 직설적으로 꼬집는 그의 화법은 '다소 감정적 표현'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유쾌하게 시청자 마음을 풀어준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훨씬 더 많다.
그는 방송 뉴스 진행자는 흐트러짐 없이 점잖고 차분해야한다는 통상적인 인식을 바꿔놨다. 다변화된 매체 환경과 뉴스 토크프로그램의 홍수 속에 분명한 색깔로 차별화를 꾀했다.
덕분에 그는 시청자들 사이에 '앵그리 앵커' '버럭 앵커' '호통 앵커' 등의 별칭이 붙었을만큼 화제의 인물이 됐다. 예능프로그램(SNL코리아 시즌3)에서는 그의 독특한 진행 스타일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시청자들의 답답한 심정을 대변하는 그의 '호통 화법'은 방송가에서도 주목을 받는다. 김명준 앵커를 <더팩트> '스페셜인터뷰이'로 초대했다. 그는 "대중 스타 연예인도 아닌데"라며 몇 차례 고사하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는 지난 27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퇴계로 매경미디어그룹 사옥 1층 로비 커피숍에서 2시간동안 진행됐다.
-시원한 발성을 분출하는 앵커의 독특한 진행방식 때문에 같은 뉴스라도 더 강렬하게 와닿는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이런 인터뷰를 하는게 좀 쑥쓰럽긴 하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실 초창기에는 윗분들한테 자주 불려가 지적을 받기도 했어요.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친다고요. 그러고나면 아무래도 위축이 돼서 주춤할 수 밖에 없었고요. 그럴 때마다 방송스태프들(연출 작가)은 "잘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위로해줬죠. 요즘엔 자주 불려가지도 않지만, 가끔 마주쳐도 "야, 살살 좀 해라" 이러면서 은근히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입니다.
'뉴스파이터'는 평일 오후 4시20분부터 5시40분까지 방송되는 뉴스광장 프로그램이다. 2014년부터 오전 9시대에 방송하다 2015년 이후 김명준 앵커(보도본부 시사제작국장)가 진행을 맡아 현재까지 오후 시간대 이슈를 파헤친다. 그는 강력범죄(성범죄), 여야 정치 대립, 연예계 파문 등 대체로 공분을 살만한 뉴스인 경우 예외없이 호통을 쳐 보는 이들과 교감한다.
-시사 뉴스 토크로는 꽤 생명력이 긴 장수 프로그램인데,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뉴스는 기본적으로 딱딱하다는 인식이 크죠. 뉴스를 전달하는데도 리드미컬한 호흡 조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안에 따라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강하게 강약 조절을 할 필요가 있어요. 뉴스에 담긴 희노애락을 일정 부분 직접 표현해줌으로써 시청 수용자들과 좀더 쉽고 친근하면서도 슬픔과 아픔을 함께 공유하는 거죠. 공감해주는 시청자들도 많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이고요.
김 앵커는 2013년 MBN 아침 신문 읽기 프로그램인 '아침에 창 매일경제'(현 '아침&매일경제')에 정치부 기자 패널로 처음 출연했다. 감각적인 멘트 등으로 확실한 두각을 보여주며 단 2회 출연만에 해당 프로그램 진행자를 꿰찼다. 그는 스스로도 "신문기자 시절엔 그저 평범하고 특징이 없었는데 방송과 인연을 맺으면서 저도 몰랐던 새로운 내면 열정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시청자들 사이에 어느새 유행어처럼 회자되는 멘트도 있다.
몇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멘트는 '사람입니까! 사람이에요?'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유행어급이 됐습니다. 방송이 나가고 나면 관련 이슈에 대해 격려와 응원, 칭찬 등으로 공감을 표시하죠. 이런 저의 말투를 흉내낸 답글로 피드백을 많이 줍니다. 물론 부정적 반응도 있지만 '관심'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어느쪽이든 프로그램을 이끌고갈 힘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입니까! 사람이에요?'나 '대~박~사건' 등의 멘트는 그의 진행방식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에게 사이다같은 문구다. 패널들조차 종종 따라할 정도다. 그는 뉴스속 인물들의 성대모사까지 거침없이 해대며 주목도를 높인다. 홍준표 안철수 문재인 등 뉴스 속에 등장하는 정치인의 목소리를 흉내내는가 하면 한석규 송강호 등 인기 연예인들의 대사나 트로트 가수의 노래를 흉내내기도 한다.
-기존 앵커들과 차별화한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일부 다른 의견도 있다.
패널과 함께 하는 뉴스 토크는 이슈 중심에 서있는 사건들을 분석하고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불편부당(不偏不黨, 어떤 이념이나 어떤 무리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도적 입장을 지킴)이라는 언론의 기본사명을 잃지 않는다는 거죠. 정치성향이야 누구나 다를 수 있지만 저는 개인적 생각을 방송에서 드러내본 일이 없어요.
방송을 처음 접한 시청자들은 그의 리드미컬한 말투에 호기심을 갖고, 다음엔 직설적으로 들이대는 돌직구에 차츰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래서 앵커의 실제 성격이나 스타일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얼마전 MBTI(성격유형 검사)를 해보니 ESFP로 나왔다"고 설명을 대신했다. 이 유형은 사교적이고 활동적이며 수용력이 강하고 친절하며 낙천적이다. 또 어떤 조직체나 공동체에서 밝고 재미있는 분위기 조성 역할을 잘한다.
-호통을 치는 진행으로 방송심의 대상이 된 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그만큼 주목의 대상이 된다는 얘기인데요.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순기능이 더 많음에도 제재를 받아야하는 입장에선 아쉬운 점도 많죠. 대다수 일반 시청자들이 공감해도 이해당사자들이 불편함을 못참고 이의를 제기하면 어떤 식으로든 답을 줘야하니까요. 단지 표현방식이 좀 거칠다는 이유로 감정적이거나 편향성의 잣대로 단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김 앵커는 지난해 '이태원 참사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긴급 브리핑 발언'(MBN 뉴스파이터 2022년 11월1일 방송)과 관련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대상에 올랐다. 진행자가 윽박을 지르듯 호통치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중 '품위유지' 조항을 위반했다(행정권고)는 이유였다. 심의위원들 중엔 "트레이드마크나 스타일로 방심위가 이를 제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당시 방송에서 그는 이태원 참사를 언급하며 "그렇다면 대체 뭐가, 156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이 참사에 대해서 누가 책임을 지라는 겁니까. 누가 책임이 있다는 겁니까?"라고 고함을 질렀다. 장관의 사과문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솔직하지 못해요. 말을 빙빙 돌립니까. 이거 해석할 사람은 하고 말 사람은 말라는 거예요?"라고 멘트했다.
-마지막으로, 국내 '1호 앵커맨'으로 불리는 봉두완을 연상시킨다는 분들도 있다.
너무나 과분한 비교 대상인 것같습니다. 저를 보고 그분을 그냥 떠올려주신 것만으로 영광입니다. 당시엔 제가 아주 어린 시절이었는데도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란 멘트를 기억할 정도니까요. 뉴스로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비판적 시각으로 유명하신 분이었죠. 개인적으로 뵌 적은 없지만 방송가에서는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봉두완은 59년 동화통신 기자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해 한국일보와 중앙일보에서 미주특파원 및 논설위원 등으로 활약했다. 69년부터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의 앵커를 맡았다. TBC 뉴스 프로그램 '봉두완의 뉴스전망대'를 진행할 당시엔 독특한 발성의 도발적인 멘트로 유명했다. 정부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독설을 날리며 '1호 앵커맨'의 입지를 다졌다.
정형화 되고 틀에 박힌 멘트는 식상하기 마련이다. 호통 진행의 본질은 '공감'이다. 피드백과 교감이 없다면 시청자 입맛이 까다로운 뉴스 프로그램으로 장수하기 어렵다. '뉴스파이터' 김명준 앵커는 '정인이 사건' 같은 사회적으로 가슴 아픈 뉴스를 다루면서 울먹인 적도 있다. 트레이드 마크가 된 그의 '호통' 또는 '버럭' 스타일은 처음부터 의도한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솔직한 내면의 진정성을 내보인 대목으로 이해되는 부분이다.
김명준은 2000년 세계일보 공채기자로 출발해 MBN(정치부 기자)으로 이적해 앵커로 변신했다. MBN '아침의 창 매일경제', '주말 뉴스와이드', '진실을 검색하다 써치' 등을 거쳐 현재 '뉴스파이터'를 8년째 진행 중이다. 그는 언론인 가족이기도 하다. 부친(2015년 작고)은 전남일보와 한국일보 기자로 활약했고, 친형 김남권이 연합뉴스 정치부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