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신간] 오래된 서촌 오래된 서울

오래된 서촌 오래된 서울 표지/미세움 제공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추사 김정희는 1818년 4월 26일 대구 감영에서 시아버지의 살림을 돕던 아내 예안 이씨에게 편지를 썼다. 겉봉에는 '장동 상장'이라고 적혔다. '장동에서 편지를 올린다'는 뜻이다. 당시 추사가 살던 곳이 장동인 셈이다.

장동은 서촌의 옛 이름이다. 서촌이라고 불리는 인왕산-경복궁-사직로 앞길-백악 사이 지역은 옛 이름을 놓고 논쟁이 잦았다. '웃대'나 '상촌'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종로구는 다 틀렸다며 아예 '세종마을'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오래된 서촌 오래된 서울'은 '장동'이 맞다고 한다. 장동이라는 근거는 풍부하다. 서촌을 대표하는 사대부 김상헌은 '장동 김씨'이며 정선은 서촌의 풍경을 '장동팔경첩'으로 남겼다. 조선 전기에는 '장의동' 또는 '창의동'이었다. 이방원은 자신의 집을 '장의동 본궁'이라고 불렀고 영조는 자신의 집 창의궁이 '장의동'에 있다고 썼다. 숙종 때부터 '장동'으로 표기했다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대규모로 바꾸면서 효자동, 궁정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까지 유지됐다.

저자는 이같이 서촌을 깊숙이 파고든다. 그럴만한 매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다양한 계층이 섞여살았다. 사대부 일색이었던 북촌과 달리 서촌에는 사대부부터 군인, 중인, 평민들이 공존했다. 현재의 수성동과 옥류동 일대는 사대부와 중인의 공동거주 구역이기도 했다. 통인동에는 태종과 세종의 집이 있었고 내시부, 사포서, 내섬시 등 왕실기관이 자리잡았으며, 현재는 주택과 통인시장, 참여연대, 청와대가 있다. 서촌만이 가진 중층성과 다양성을 보여준다.

이 책은 현역 기자의 발로 뛴 취재를 바탕으로 태어났다. 새로 밝힌 내용이나 최근의 연구성과가 반영됐다는 미덕이 있다. 태종과 세조가 태어난 잠저(장의동 본궁)에서 문종과 세조도 태어났다는 사실은 처음 밝혀졌다. 필운대의 주인은 권율이 아니라 아버지 권철이었다는 사실도 그렇다.

서울에는 깊은 역사와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오래된 서촌 오래된 서울'을 읽으면 더욱 뚜렷해진다. 저자는 역사의 가치는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역사가 만들어준 풍부한 이야기를 잘 가꿔나가는 것이 역사를 대하는 좋은 태도라는 말이 여운을 남긴다.

김규원 지음. 미세움. 352쪽. 1만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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