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강일홍 기자] 김영임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묵계월 유파의 김영임, 이은주 유파의 김장순은 8일 오후 1시 대전에 위치한 문화재청을 찾아 무려 1만명이 넘는 국악인 및 관계자들이 서명한 탄원서를 직접 제출했다. 탄원서 제출에 앞서 60여명이 피켓시위도 벌였다.
피켓시위에 참여한 국악인들은 "'정부는 문화에 대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말라'는 한 마디가 오늘의 한류와 K-POP으로 세계문화를 선도하는 문화강국의 초석이 됐고, 그 한류의 원형자산은 국악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다.
경기민요 비대위는 7일에도 서울 종로 보신각, 국립국악원, 용산전쟁기념관에서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제 제57호에 대한 인정예고를 즉각 철회하고 유파별 보유자 지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어떤 사연인지 피켓시위에 참여한 그의 입장을 직접 들어봤다.
<다음은 경기민요 명창 김영임과 주고받은 일문일답>
-문화재청에 국악인들이 서명한 탄원서를 제출했는데 어떤 내용인가?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유파를 인정해달라는 것입니다. 문화재청이 일방적으로 경기민요 유파를 통폐합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오랜 세월 이어져온 유파의 맥을 끊은 셈인데요. 이렇게 되면 각 유파의 전승교육사 및 수제자들은 당장 적을 둘 곳이 없어 공중분해되고 맙니다. 더구나 3개의 유파 중에서 안비취 유파에서만 보유자가 3명이 지정돼 유파별로 맞춰오던 균형도 사라지는 셈이고요.
국악인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은 지난 5월 12일 문화재청이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로 김혜란, 이호연 명창을 인정 예고한 데서 비롯됐다. 1997년 안비취 유파의 이춘희 명창이 보유자로 지정된 지 28년만에 안비취 유파의 김혜란 이호연 명창만 보유자로 인정 예고됐다. 묵계월 유파의 김영임 명창과 이은주 유파의 김장순 명창은 인정예고에 제외되면서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경기민요 3개 유파를 모두 인정해달라는 취지인가
경기민요는 묵계월 안비취 이은주 유파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현재까지 유파별 전승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전승교육사를 추천받는 절차도 유파 각 보유자 선생님이 추천해요. 문화재청에 전승교육사 심의와 이수자 심의 등도 유파를 구분해 서류를 제출하고요. 문화재청도 그동안 유파 표기에 대한 이의제기가 없었어요. 55년 째 국악인으로 살면서 이런 일로 탄원서를 내고 피켓 시위를 해야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경기민요는 문화재청 전신인 문화재 관리국이 1975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그동안 문화재청은 경기민요 보유자로 묵계월, 이은주, 안비취 3명을 인정했다. 3명 보유자의 제자로 '안비취 유파'의 이춘희 김혜란 이호연, '묵계월 유파'의 김영임, '이은주 유파'의 김금숙 김장순 등이 전승교육사로 전승 활동을 해왔다.
-논란이 되고 있는 3개 유파 인정 주장에 분명한 근거가 있나?
'경기12잡가'는 적벽가·방물가·출인가·선유가·십장가·평양가·유산가·소춘향가·제비가·집장가·형장가·달거리 등이 있어요. 열두 곡 연창(連唱), 완창을 위해서는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죠. 가사가 틀려도 안됩니다. 현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이 쓴 책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긴 잡가를 세 분의 경기민요 초대 무형문화재 보유자 지정 당시 각각 네 곡씩 나눠 전승 종목으로 지금까지 보유하게 된 것입니다.
김영운 위원장이 발간한 경기민요 책자(2008년 11월 28일 민속원, 김영운 김혜리 연구사 공동 집필) 14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돼 있다. '보유자 지정 당시 세 명의 경기명창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면서 12곡의 긴 잡가를 네 곡씩 나누어 전승종목으로 보유하게 됐다. 묵계월 : 적벽가, 신유가, 출인가, 방물가/ 이은주 : 평양가, 집장가, 형장가, 달거리/ 안비취 : 유산가, 제비가, 소춘향가, 십장가'.
-애초 경기민요의 유파(流派)가 없다'는 문화재청의 주장은 무엇인가?
문화재청은 국악타임즈가 질의한 내용에 대한 답변에서 '경기민요는 초대 보유자 지정 당시에도 유파가 없었다'고 말했는데요. 애초 유파가 없었기 때문에 유파를 관리하는 법령이나 시행령 등을 마련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인데 어불성설이에요. 유파가 없었음에도 복수의 보유자를 지정하는 것은 관례로 보나 문화재청의 보유자 지정 사례를 보나 납득할 수 없는 억지입니다. 음악 등 개인 종목은 단수의 보유자 지정이 통상적이기 때문이죠.
-국악인으로서 소리에 대한 열정과 집념이 강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흔히 국악 하면 남도의 가락으로 오해하시는데 사실은 경기민요가 중심입니다. 보유자 선정은 '경기12잡가'로만 인정하게 돼 있습니다. 민요와 달리 6박이나 4박의 소리로 장구 하나에 의지해 완창하는 데만 꼭 4시간 이상 걸려요. 가사 분량만 해도 엄청난데 모두 외워서 불러야 해요. 나중엔 다리에 쥐가 나서 누군가 일으켜주지 않으면 꼼짝도 못할 정도예요.
김영임의 마지막 희망사항은 반세기 이상 스승으로 모셨던 고 묵계월 선생의 뒤를 잇는 일이다. 그 자신 국악인으로 살아온 필생의 업이기도 하다. 김영임은 인터뷰 말미에 "엄연히 존재해온 유파를 인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면서 "소중한 소리 문화 유산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전승되고 뿌리내릴 수 있는 시스템이 너무나 아쉽다"고 말했다.
무형문화재 지정을 둘러싸고 국악계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파와 파벌 등 알력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한없이 아프고 쓰리다. 그는 "이런 잘못된 상황을 바로 세우지 못하면 선생님에게도 죄송하고 저를 따르는 수많은 후계자들에게도 미안한 일"이라면서 못내 아쉬움을 털어놨다.
한편 문화재청의 국가무형문화재(경기민요) 보유자 인정예고를 둘러싸고 국악인들이 반발하고 나서면서 우려와 논란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악인들은 향후 지속적으로 문화재청, 국립국악원 등지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