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ㅣ 박희준 기자] '정약용하면 으레 떠오르는 것은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과 유배생할, 아니면 정조대왕과 수원화성, 천주교 등일 것이다.그가가 당대를 어떻게 보고 어떤 생각을 가족 살았는지는 잘 모른다. 정약용 선생이 쓴 '목민심서', '경제유표' 등이 있지만 두툼한 데다 어렵다는 편견이 감히 책을 펴는 것을 꺼리게 한다. 정약용 선생의 생각을 쉽고도 깊이 천착할 수 있는 책은 이런 편견을 깨기에 충분하다. 최근 나온 <정약용 코드>라는 책이다.
박정현이 쓰고 새움출판사가 펴낸 <정약용 코드>는 역사 책이나 공중파 방송의 드라마에서만 존재하지만 좀체 살아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 다산에 살을 붙이고 피가 돌게 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박정현은 "흑백의 인물 다산에게 컬러를 입히고자 했다"고 책을 쓴 의도를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다산은 지금으로부터 300여년 전인 1732년 6월16일 태어나서 1836년 2월22일 세상을 떠난 인물이어서 오늘날 독자들에게는 생동감이 없을 수밖에 없다. 양반인 그가 유배를 가서 오래 있었다는 통념은 독자들이 그에게 다가서기를 막는 두터운 장벽이자 편견이 됐다.
저자는 이를 깨고자 노력했다.서울신문 기자 생활 26년을 하면서 몸에 쌓인 팩트(사실) 발굴과 확인 등 기자의 몸에 밴 '사실천착'의 본능과 국무총리 공보실장과 한국수자원공사 감사 등 공직생활을 하면서 새롭게 눈뜬 안목이 균형있게 다산을 보고 그를 새롭게 해석하도록 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다산 정약용은 '현대인이 추구하는 통섭형 인재' '실천하는 하이브리드 지식인'이다.
저자는 다산은 200여 년 전 갓쓴 고리타분한 선비가 아니라 현대에 딱맞는 인물이라고 강조한다. 그는문과와 이과를 드나드는 양손잡이 능력을 보여줬고,과학과 예술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르네상스형 천재라고 평가했다. 다산은'‘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서'를 펴낸 학자이자 사상가이면서, 200여 년 전에 엑셀을 돌려 어려운 계산을 척척해냈고 화성축성에 삼각함수를 활용한 수학자이며, 음악가이자 메모광이라는 점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완전 닮은 꼴이라고 저자는 극찬한다.
저자는 우리는 다산을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을<정약용 코드>에서 웅변한다. 특히 가슴에 와닿는 부분은 정약용이 당시 오지인 전남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 까닭이 우리가 알고 있는 천주교를 박해한 신유사옥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과감한 언행때문이라는 정약용의 고백을 소개한 대목이다. 정약용은 남의 잘못과 허물을 감싸는 아량보다는 남을 과감하게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면서 '인생 잘못 살았노라' 고 뼈저린 후회를 했다는 고백을 저자는 찾아내 햇빛을 보게 했다.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가 쇠를 녹이고 많은 사람을 헤치는 일은 역사에 부지기수로 등장하지만 이를 몸소 고백한 조선의 학자, 양반은 쉽게 찾기 어렵다.
다산의 말 한마디, 글 한자 치고 값지지 않는 게 없지만 민간기업과 공직사회에서 성공하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만드시 몸과 뇌리에 깊이 새겨야 할 게 적지 않다. 저자는 다산이 총애를 과감하게 거부하고 윗사람의 존경을 받으라고 당부했다는 점을 꼽는다. 윗사람의 존경을 받는 비결은 당당하고 떳떳하게 할 말을 하는 데 있다고 다산은 강조했다. 윗사람 앞이라고 주눅들지 말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산이 말한 청렴이 목적이 아니라 통치의 수단이라고 풀이했다. 청렴하지 않으면 아랫 사람을 다스리는 권위가 서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저자는 풀이했다.
다산의 발언, 글 한마디치고 허투루한 게 없다. 금과옥조다. 그렇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약이 되는 말은 귀에 잘 들리지 않고 입에 쓸 뿐이다. 그런 말을 받아들이는 도량을 가진 윗사람이 아닐 경우 이런 말은 화를 자초하기 십상이다. 수월하게 들어올 금전을 보고 청렴함을 유지하기란 보통사람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실행과제다.
다산이라고 이게 쉬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임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신분제 사회에서 수백년 지속된 관행의 두터운 벽과 새로운 세계를 열려는 통찰력과 통섭의 혜안을 가진 지식인이 겪었을 좌절감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런 좌절의 강을 건너고 역경의 벽을 넘으면서 후대를 위해 '지혜와 사상과 철학의 칼'을 벼리는 다산의 일생을 '코드'로 읽어낸 저자의 식견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다산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다리와 도로,수레로 살아 움직이는 '시끌벅적한 나라' 를만드는 경제개혁, 양반도 직업을 갖는 사회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한다. 다산은 양반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말라는 무노동 무음식 원칙을 강조했으며 남존여비의 조선시대에 정약용은 여성들이 과로하지 않도록 옷감짜는 길쌈을 중단시키자고 한 인물이라고 소개한다.
저자는 또 성리학의 선비들이 중국을 떠받들던 시대에 다산이 중국보다는 일본에 주목하고 일본의 학문수준이 조선후기쯤부터 조선을 능가했다고 진단하면서,일본에 대비책을 세워서 항상 경계심을 갖고 관찰하라고 당부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개혁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나라가 망하고 말 것이라는 다산의 예언 아닌 예언이 실현되는 데는100년이 걸리지 않았다.
만약 조선시대에 다산같은 식견과 혜안을 가진 선비가 좀 더 많았다면 조선은 더 부유한 나라가 되고 멸망하지도 국권을 빼앗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인물들은 역사의 뒷안길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우리의 책무는 그런 일물을 더 찾아내고 그들의 생각을 더 깊이 파고 들어 제2,제3의 정약용과 제2, 제3의 <정약용 코드>를 쓰고 출한하는 것이 될 것이다.
26년 기자생활을 하면서 사회부장,경제부장,논설위원,경영기획실장 등을 지냈으며 국무총리 공보실장과 한국수자원공사 감사 등 공직을 거친 저자는 능히 이런 일을 할 것으로 믿어의심하지 않는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자양분과 통찰력을 얻은 그는 정약용 정신을 더 탐구해 더욱더 새로운 면모를 우리 독자들에게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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