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강일홍 기자] '빛바랜 노트를 펼치며 어리숙하지만 순수했고, 고달팠지만 열정으로 가득했던 이삼십대의 순정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청춘의 비망록 같은 시를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옮기자니 마음에 전율이 일었다. 그 시절의 아픔과 초조함이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가감 없이 그대로 옮겨 적었다. 어쨌거나 내 생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렇다.'(소설가 겸 시인 이상훈)
인기 예능 PD 출신 작가로 활동 중인 시인 겸 소설가 이상훈이 신간 시집을 냈다. 최근 출판사 파람북에서 출간한 '아주 높다란 그리움'이다.
이상훈 시집 '아주 높다란 그리움'은 빛바랜 노트에서 발굴해낸 젊은 날의 자화상이다. 순수와 열정으로 가득했던 청춘의 시편들이 수십년이 흘러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이번 시집의 근원은 그가 군대를 전역하고 직장에 자리를 잡고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고 결혼하고 첫 아이를 만나던 시점이다. 묵은 상자에 담긴 채 구석에서 구석으로 이어지며 긴 어둠의 시간을 보낸 뒤 마치 타임캡술 열리듯 탄생했다.
사는 일에 경황이 없어 마음 두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먼지를 뒤집어쓴 채 튀어나온 상자 하나, 길게는 50년 가까이 된, 대학 시절부터 누런 갱지 노트에 빼곡히 담아온 시들이다. 저자는 마치 오래된 유적을 발견한 듯 기뻤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젊은 날은 몸부림의 연속이다. 이 시기에 쓰인 시들은 동 세대의 공통분모였던 가난, 암울한 시대의 획일적 사회 분위기, 현실의 불안과 불확실한 미래, 알 수 없는 상실감과 여지없이 실패하는 사랑 등으로 온통 얼룩져 있다.
KBS와 SBS, 종편채널까지 PD로 살면서 중장년에 이르고,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찾고 약간의 여유도 누려보는 사이에 혼돈과 고난의 일기 같았던 시편들은 점차 화해와 희망으로 변해가며, 삶에 대한 관조와 통찰이 담긴다.
이상훈 작가는 생업과 별개로 단지 글 쓰는 것이 좋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2000년 첫 시집 '고향생각'이 20만 부 이상 팔리면서 데뷔와 동시에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드라마 대본과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해 첫 장편소설 '한복 입은 남자'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역사 미스터리 '제명공주', '김의 나라' 등 치밀한 역사적 고증과 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한 장편소설들을 써냈다. 이들 작품들은 현재 드라마와 뮤지컬로 제작 중이다.
경남 밀양출생으로 마산고와 성균관대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수학했다. KBS 공채 피디로 방송에 입문한 뒤 SBS와 채널A에서 근무하며, 방송가에서는 '스타 피디'로 유명하다. 현직 PD 시절에도 방송프로그램 연출과 대본을 직접 집필해 작가로서의 능력을 일찌감치 인증받았다.
1세대 예능 PD로 KBS 시절 '쇼비디오자키' '유머1번지', SBS 시절 '열려라 웃음천국' '기쁜우리토요일' 'LA 아리랑' '서세원의 좋은 세상만들기' 등 인기프로그램을 연출했다. 채널A 본부장 시절에는 '이제 만나러 갑니다' '불멸의 국가대표' 등 히트 프로그램을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