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예리 기자] 1일 오전 11시45분께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기숙사인 무악1학사 뒤편에서 안산 산책로로 이어지는 돌계단 출입구에 약 2m 높이의 철제 울타리가 설치돼 있었다. 돌계단 옆엔 '신원불명의 괴한이 침입해 생활관-안산 도로 통행로를 폐쇄한다. 이동이 필요한 경우 다른 통행로를 사용해 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기숙사 인근에서 나체 복면 남성 출몰 등 공연음란, 강제추행 사건이 잇따르면서 학교 측이 통행로 일부를 잠정 폐쇄 조치한 것이다. 연세대는 지난달 20일 생활관 홈페이지를 통해 무악1학사 뒤쪽, 안산으로 통하는 출입구를 잠정 폐쇄하고 보행로 가로등의 조도를 조금 더 높이는 한편 순찰을 강화하겠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이날 울타리는 잠금장치가 풀린 상태였다. 자물쇠는 덩그러니 왼쪽 울타리에 걸려있었다. 경찰이나 보안업체 직원 등 순찰 인력도 보이지 않았다. 울타리 양옆은 철조망으로 막혀 있었지만 돌담을 딛고 넘을 수 있을 정도로 높이가 낮았다.
이윽고 연세대 학생들이 모습을 보였다. 개강을 맞은 학생들은 통행로를 따라 서둘러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가 내린 궂은 날씨에 통행로는 어두침침했지만 10~15m 간격의 가로등 11개는 모두 꺼져 있었다. 약 350m 길이의 통행로는 양쪽 끝에만 비상 호출벨과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을 뿐이었다.
최초 강제추행 사건 신고 이후 약 3개월 지나도록 범인이 붙잡히지 않으면서 학생들은 일제히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모(26) 씨는 "기숙사 코앞에서 그런 사람이 버젓이 돌아다닌 게 충격"이라며 "원래 기숙사 근처가 외부인 출입도 잦고 보안이 철저하게 유지되는 편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나모(23) 씨도 "걱정되고, 빨리 잡혔으면 좋겠다"며 "기숙사 근처가 원래 외부인 출입도 잦고 밤길이 어두운 편"이라고 했다.
잠정 폐쇄한 통행로가 여전히 개방돼 있고, 별도의 통제도 이뤄지지 않으면서 학교의 소홀한 안전관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이 씨는 "학교가 내놓은 대책이 근본적이진 않기 때문에 실효성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며 "그 사람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그런 사람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가 더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김모(21) 씨는 "최대한 셔틀버스로 이동하려 하고, 친구들과 같이 다니려 한다"며 "해당 남성이 한참 전에 출몰했는데 학생들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게 돼 학교가 왜 알리지 않았냐는 반응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숙사로부터 안전을 위한 조치를 시행한다는 문자는 받았지만 그 외에 전달받은 내용은 없다"고 했다.
A(23) 씨도 "나체 복면 남성 소식을 접하고 당황스럽고 불안했다"며 "학교가 전체를 수색하거나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전했다. B(22) 씨 역시 "학교에서 통제는 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학교 측은 개강 이후 별다른 추가 안전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통행로 잠정 폐쇄 조치를 두고는 "안산으로 통하는 문이 5개 정도 있는데 사건과 관련된 문만 1~2개 우선 폐쇄한 것"이라며 "폐쇄한 문은 이번 사건 이후 새로 달았는데, 해가 떠 있는 시간엔 열어두고 해가 질 때 닫아둔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6월12일 연세대 기숙사 인근에서 나체로 복면을 착용한 남성이 행인을 껴안고 도주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지난 7월21일에도 인근에서 같은 차림의 남성이 수풀에 숨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이어 지난달 19일에도 나체로 복면을 쓴 남성이 연세대 학생을 성추행하고 달아났다.
경찰은 세 사건이 동일인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해 신원을 추적하고 있지만,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이후 지난달 25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하의를 벗고 신체를 노출한 60대 남성이 출몰해 공연음란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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