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보이스피싱 피해자인데"…계좌 정지에 예금도 묶여


법원, '외화거래 주의문' 근거로 판매자 중과실 인정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서 외화를 판매하다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입금돼 계좌가 묶인 판매자가 금융감독원에 예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챗GPT 생성

[더팩트ㅣ선은양 기자]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서 외화를 판매하다 보이스피싱 피해금이 입금돼 계좌가 묶인 판매자가 금융감독원에 예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당근마켓이 안내한 '외화거래 3자 사기'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은 채 거래한 것은 중대한 과실이라고 판단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0부(김용찬 부장판사)는 지난달 24일 A 씨가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낸 환급금 청구 기각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 판결은 A 씨가 항소하지 않아 확정됐다.

A 씨는 당근마켓에 홍콩달러 7만달러를 판매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후 구매 희망자와 연락해 거래하기로 하고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A 씨 계좌에는 외화 판매대금 명목으로 1290만원이 입금됐고, A 씨는 입금을 확인한 뒤 구매자에게 홍콩달러를 건넸다.

하지만 입금된 돈은 구매자가 보낸 대금이 아니라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송금한 돈이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피해자에게 A 씨 계좌로 돈을 보내게 한 뒤, A씨에게서 외화를 넘겨받는 이른바 '3자 사기' 수법이었다.

피해 신고가 접수되면서 A 씨 계좌는 지급정지됐고, 이후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A 씨의 예금채권도 소멸했다.

예금채권 소멸은 은행에 해당 계좌의 예금을 지급해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A 씨는 자신도 보이스피싱 범행에 이용당한 피해자이고 실제로 구매자에게 외화를 건넨 정상적인 거래였다며 소멸한 예금채권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A 씨가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하거나 이를 알고 외화를 건넨 것은 아니라고 봤다.

다만 A 씨가 주의를 기울였다면 입금된 돈이 제3자의 피해금일 가능성을 알 수 있었다며 환급 대상에서는 제외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사기이용계좌 명의인이 계좌가 사기에 이용된 사실을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경우에는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판시했다.

특히 당근마켓이 외화거래 과정에서 이용자에게 노출한 주의문을 판단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당근마켓 내부 메신저에 '외화거래 3자 사기 주의' 안내가 표시됐고, 이를 클릭하면 "입금자와 거래 상대방의 명의가 일치하는지 확인하라", "구매자가 보는 앞에서 직접 이체하도록 요구하라"는 등의 주의사항이 안내됐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A씨는 계좌번호를 미리 알려주고, 입금자와 거래 상대방의 명의가 같은지 확인하지 않았으며 구매자가 직접 송금하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거래 가격과 방식도 일반적인 직거래와 달랐다. 시세보다 판매자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가 이뤄졌고, 구매자는 외화를 확인하기도 전에 거액을 먼저 입금했다.

재판부는 "A 씨가 당근마켓의 주의문을 제대로 확인하고 입금자와 구매자의 명의를 대조했다면 3자 사기 가능성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다"며 "중대한 과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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