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한복판을 운전대 없는 버스가 누비고, 앱으로 호출한 무인 택시가 강남의 복잡한 도로를 질주한다. 서울시가 '자율주행 선도도시'를 선포하며 택시부터 마을버스, 청계천 셔틀까지 다양한 미래 교통수단을 도로 위로 올리고 있다. 서울시 자율주행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직접 현장을 누빈 르포를 통해 자율주행이 과연 서울 대중교통의 지속 가능한 미래가 될 수 있을지 4회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정소양 기자] 서울 도심 한복판을 달리는 자율주행 셔틀과 버스가 어느덧 시민들의 일상에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스며들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체험형 서비스'를 넘어 실제 서울의 핵심 대중교통 체계로 편입되기까지는 여전히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서울시와 전문가들은 자율주행이 '전시용 테크'를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 교통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기술적 고도화보다 선제적인 규제 해소와 자생적 수익 모델 구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서울시의 자율주행 사업은 민간 기업의 기술력과 시의 정책적 지원이 결합된 '민관 협력 실증' 단계에 머물러 있다. 올해 서울시가 자율주행 운행 및 관리에 편성한 예산은 총 11억3731만8000원. 이 예산은 차량을 보유한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도록 돕는 운영 지원비와 더불어, 우수한 성과를 낸 기업에 지급되는 기술 발전 지원금 등으로 구성됐다. 사실상 요금 수입만으로는 초기 투자비를 회수하기 어려운 민간 기업들에 공공 재정이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재정 의존형 구조의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자율주행 기술을 장려해야 할 '지원 체계의 허점'이 자리 잡고 있다. 자율주행 차량은 정식 등록 차량이 아닌 '임시운행 허가'를 받은 임시 번호판 상태로 운행된다. 문제는 이 때문에 기존 전기버스 등에 지급되는 막대한 규모의 친환경차 보조금 혜택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시 관계자는 "전기 버스 도입 시 일반 차량에는 많은 보조금이 나가지만, 자율차는 임시 번호판이라는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다"고 토로했다. 고가의 자율주행 장비를 탑재하느라 초기 투자비가 일반 차량보다 월등히 높은데도, 오히려 보조금 사각지대에 놓여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가중되는 역설적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규제를 가장 큰 '허들'로 꼽는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노선이 정해진 서울의 버스체계는 자율주행에 매우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면서도 "전반적으로 규제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어린이보호구역이나 노인보호구역 내 운행 제한은 완전 무인 자율주행(레벨4 이상)으로 가는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현행 규정상 보호구역 내에서는 안전을 위해 운전자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이 교수는 "완전한 자율주행은 결국 무인화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운전자 없이는 진입조차 못 하는 구역이 존재한다면 기술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규제가 가이드라인이 되어 기업이 기술을 펼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허들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토교통부에서 TF를 구성하고 법적 규제를 명확히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기술이 실생활에 들어오는 속도와 법이 만들어지는 속도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현재 최대 과제다.
◆"타다 사태 되풀이 않겠다"…인력난 겪는 운수업계와 '상생의 길' 모색
자율주행의 대중교통 편입을 가로막는 또 다른 변수는 기존 운수업계와의 갈등이다. 과거 '타다 사태'에서 목격했듯, 신기술 도입은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좌초되거나 퇴보할 위험이 늘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의 기류는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택시와 버스 업계가 자율주행을 '뺏어야 할 밥그릇'이 아닌, 고질적인 인력난을 해결할 '보완재'로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의 택시와 버스 업계는 기사 고령화와 신규 채용 어려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택시 면허 대수의 약 30%가 기사를 구하지 못해 차량을 운행하지 못하고 서 있는 상태다. 택시 업체 입장에선 차를 세워둘수록 손해인 상황이다. 버스 역시 기사 수급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시 관계자는 "운수 종사자분들도 인력 부족과 고령화 문제를 직접 체감하고 있어, 무조건 막아서 될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다"며 "강남 심야 자율주행 택시 도입 당시에도 택시 조합 등과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쳤고, 기술 발전에 따른 대세를 이해하고 양해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다만, 업계는 '생존권 침해'가 우려될 정도로 급격한 확장은 경계하고 있다. 강남 자율주행 택시가 7대에 불과한 점도 기존 택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며 기술력을 검증하기 위해 조율한 결과다. 업계는 면허 제도 등 법적 안전장치가 마련된 상태에서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시 역시 ‘자율주행 운영 활성화 조례’를 통해 위원회를 두고 택시·버스·노동조합 등 이해관계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다.
'타다'는 자율주행의 반면교사다. 이호근 교수는 "과거 타다 사례처럼 이해관계 충돌로 신기술이 지연된 것은 국가적으로 뼈아픈 경험"이라며 "노동계 역시 본인들의 밥그릇만 지키려 하기보다 다가오는 기술을 수용하며 공존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교수는 특히 "도심 혼잡 구간은 시간제 운영을 통해 일반 차량과의 혼용 지체를 피하고, 산간오지나 농어촌 등 교통 소외지역의 수요응답형(DRT) 서비스와 연계한다면 자율주행의 사회적 수용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특히 이 교수는 기술 발전만 놓고 본다면 2028년이면 완전한 자율주행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결국 남은 것은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뒷받침이다. 자율주행은 이미 서울의 도로 위에 올라왔다. 이제 이 차들이 ‘실핏줄’을 넘어 ‘대동맥’으로 흐르기 위해서는 기술이라는 엔진을 뒷받침할 규제 혁신과 상생의 시스템이라는 연료가 필요한 시점이다.